중앙일보 2017.04.14. 02:56
중도주의(中道主義)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우파나 좌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인 정책을 실시하자는 이념.” 그럴듯한 개념과 달리 현실 정치권에서 중도란 ‘회색분자’나 ‘기회주의’ 등으로 폄하되곤 했다. 그중 으뜸은 ‘사쿠라’다. ‘사쿠라’의 어원은 일본어 ‘사쿠라니쿠’(櫻肉)로 색깔이 연분홍색인 말고기다. 쇠고기인 줄 알고 샀는데 먹어 보니 말고기였다는 얘기다. 박정희 정권에서 ‘중도통합론’을 들고 나온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가 사쿠라로 몰린 게 대표적 예다. 이처럼 ‘중도’는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나 균형보다는 변절이란 뜻으로 더 많이 통했다. 고(故)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엔 이런 대목도 나온다. “그도 저도 아닌 중간에 서 있으면 사쿠라로 몰릴까 봐 선명하고 극단적인 색깔을 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상사가 늘 무 자르듯 두 동강 낼 수는 없는 법. ‘중도’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진 사이 대립적 갈등은 심화해 왔다. 단지 보수-진보로 갈라진 정치권만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사회통합지수는 0.21로, 조사대상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9위였다. 최하위 30위는 분쟁 지역인 이스라엘(0.17)이었고,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은 그리스(0.25, 26위), 슬로바키아(0.23, 28위)보다도 낮았다. 게다가 지난 20년간 한국의 사회통합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왜 중도를 업신여겨 왔을까. 술을 먹어도 밤새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야 한다고들 하지 않나. 무엇을 하든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기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뒤틀린 근현대사가 중립적 태도를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일제 침략에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군부 독재를 향해 온몸 던지고 있는데 팔짱 끼고 모른 척하고 있다니, 불의에 대한 암묵적 동의 아닌가. 적으로 규정하면 차라리 명확할 것을,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는 이들이 더 꼴 보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극단에 대한 반작용일까. 최근 중도가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이가 올 초 26%에서 3월엔 29%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보수의 전략적 지지를 받는 안철수와 진보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문재인 사이에서 중도가 이번 대선의 키를 쥘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그러니 중도라고, 사쿠라라고 너무 주눅 들 필요 없다. 복잡한 세상, 오락가락하면 좀 어떤가. 어찌 양자택일만 있단 말인가. ‘짬짜면’을 시켜도 괜찮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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