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료들은 밖에서는 ‘귀신의 말(鬼話·구이화)’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사람의 말(人話·런화)’을 한다.”
미국 유명 대학 종신교수직을 받은 뒤 중국으로 돌아온 한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사석에서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중국 관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맥락도 통하지 않고 사실과도 다른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하는 말, 그게 ‘구이화’다.
한국도 최근 이 같은 중국의 모습을 똑똑히 볼 기회가 있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과 관련한 중국의 ‘공식 입장’에서다. 분명 롯데를 조준한 보복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 말로는 “외자 기업의 투자를 환영한다”든지, “외국 기업은 법과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최근 북한에 대해 취하는 일련의 압박 조치에 대해서도 여전히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정한 결의안을 성실히 이행해 오고 있다”며 녹음기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같은 언행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말마다 추임새처럼 ‘일관되다(一貫)’ ‘명확하다(明確)’ ‘시종일관(始終)’ ‘반드시(一定)’ ‘굳건하여 결코 변하지 않는다(堅定不移)’ 등의 수식어를 붙인다.
중국인들의 말은 어렵다. 특히 공식적인 장소에서 하는 정부 당국자의 말은 각종 비유와 고사성어를 버무려 해석하기가 어렵다. 기자가 막 중국에 부임한, 2년 전 만난 중국 외교관은 사석에서 기자에게 “CCTV 메인 뉴스를 얼마나 이해하느냐”고 물었다. 호기롭게 “70∼80%는 알아듣는다”고 답했지만 명문대 학부와 석사를 거쳐 외교부에서 7년여 근무한 그의 대답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반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불투명한 국내정치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는 탓에 그 의도와 속뜻을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중국의 한 언론계 지인은 “중국인들은 ‘관화(官話·정부의 공식적인 말)’ ‘타오화(套話·틀에 박힌 말)’ ‘자화(假話·거짓말)’에 익숙해져 있다”면서 “관화, 타오화, 자화에 속아선 안 된다”고 귀띔했다.
중국을 대할 때 국내정치적 시스템을 모르면 오판하기 일쑤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일행이 방중해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나 “사드 보복 우려를 관련 부서에 전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성과 운운한 점은 순진한 처사였다. 이미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밝힌 방침에 대해 왕 부장이 이와 어긋나는 내용을 내부에 전달했을 리 없다. 왕이 부장의 국내 서열을 따지자면 18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 205명 중 한 명으로 그 위에 국무위원 4명, 서기처 서기 3명, 정치국 위원 18명, 정치국 상무위원 7명 등 층층시하다. 미·중 정상회담과 북핵 문제 조율 등에서는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양제츠(楊潔지)가 나섰다.
한·중 관계는 사드 파고를 넘고 있고 곧 한국에 새 정부도 들어선다. 한·중 관계도 기로에 섰다. 중국 옆에서 이사 갈 수 없는 이상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어설프고 순진한 접근은 시효가 다했다. 말에 속지 말고 말과 행동을 함께 보며 전체적인 구조를 봐야 오판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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