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미국 주간지 ‘타임’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스물여섯 살이던 그의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표지에 실었다. 2년 뒤 이탈리아 주간지 ‘파노라마 이코노미’는 밀라노 보코니대 1학년 마테오 아킬리의 앳된 얼굴로 표지를 장식했다. 스무 살 젊은이에게 잡지가 붙여준 제목은 ‘이탈리안 저커버그’였다.
그리스 부도 위기로 유럽 경제가 매우 어려웠을 때다. 이탈리아는 12%를 웃도는 실업률에 신음했고 청년 10명 중 4명이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1만 유로(약 1200만원)를 얻어 소셜미디어 ‘에곰니아’를 창업했다. 젊은이와 일자리를 SNS로 연결해주는 구인구직 서비스였다.
저커버그가 하버드대 학생들을 상대로 페이스북을 시작했듯 아킬리도 보코니대 학생들에게 에곰니아를 알렸다. 낯선 매체를 접한 누군가가 블로그에 소개하자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졌다. 스타트업이 흔치 않던 나라에서 새파란 젊은이가 도전했다는 사실, 그것도 또래 청년의 취업을 위해 나섰다는 점이 시선을 끌었다.
아킬리가 유력 주간지 커버스토리에 등장한 건 에곰니아 알고리즘을 완성한 지 불과 석 달 만이다. ‘이탈리안 저커버그’는 팩트보다 희망이 담긴 제목이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경제는 희망이 필요한 시기였다. 에곰니아의 2013년 매출은 약 8억원. 작지 않지만 엄청나지도 않은 수치는 무의미했다. 이미 신화는 시작됐고 사람들은 계속 그를 이탈리안 저커버그라고 불렀다.
2014년 영국 BBC가 다큐멘터리 ‘차세대 억만장자’에 아킬리를 출연시켰다. 이탈리아 정부는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며 ‘대통령 메달’을 수여했다. 이어 영화사가 그를 찾았다.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처럼 아킬리를 다룬 ‘더 스타트업’이 제작돼 지난달 개봉했다. 그러자 질문이 터져 나왔다.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지난 몇 주 이탈리아 언론에는 에곰니아 현황이 하나둘 공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 보다폰, 구글 등 파트너로 알려졌던 기업이 더 이상 에곰니아를 통해 직원을 뽑지 않고 있었다. 2015년 재무제표에서 순이익은 5000유로(약 600만원)에 불과했다. 시장가치가 1조원이라던 이탈리아판 소셜미디어 신화는 급속히 허물어지는 중이다.
아킬리는 사업을 이미지로 해 왔다. 영웅이 필요했던 경제위기에 미디어가 찾아낸 영웅은 근사한 별명으로 희망이 됐지만 5년을 버티지 못했다. 치열한 경쟁에선 ‘어떤 사람이냐’보다 ‘무엇을 해내느냐’가 중요한데, 무엇을 해냈는지 따지고 들자 한 달 만에 거품이 꺼져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신뢰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로 정권을 잡았다가 국민을 배반했다며 쫓겨났다. 새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에 왔다. ‘제2의 노무현’과 ‘한국의 스티브 잡스’와 ‘홍트럼프’가 경쟁하고 있다.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선 그나마 행정수도, 대운하, 경제민주화라는 정책 이슈가 있었다. 지금은 각 후보의 간판공약이 무언지 떠오르지 않는다. “당신은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이 질문을 제대로 던지고 있는가.
친척에게 먼저 전화해 “우리 애 취직했어!” 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8만개쯤 있다고 한다. 대기업과 공무원, 중견기업까지 포함한 숫자일 테다. 해마다 배출되는 대졸자는 50만명. 비슷한 수의 취업재수생이 있으니 100만명이 8만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다음 대통령은 8만개로 100만명을 감당하는 불가능한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경제 복지 안보 등 분야마다 이런 난제가 잔뜩 곪아 있다. 이미지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 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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