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3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강 언덕 저녁 산보 옷깃 헤치고 오래된 나루터 찾아와보니 어부 집에는 저녁연기가 노랗게 핀다. 숲 뒤편으로 초승달이 날아오르고 뱃머리에는 저물녘 한기가 스며 있다. 물새는 밤의 적막을 깨며 소리를 내고 언덕의 꽃은 바람을 타고 향기 풍긴다. 해는 지고 아름다운 사람은 멀리 있어 그리움에 공연히 속만 태운다. | 江皐夕步 披襟來古渡(피금내고도) 漁舍暝烟黃(어사명연황) 林背飛初月(임배비초월) 船頭帶晩凉(선두대만량) 水禽喧夜響(수금훤야향) 岸芷越風香(안지월풍향) 日暮佳人隔(일모가인격) 相思枉斷腸(상사왕단장) |
정조 순조 연간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시인인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지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한강 가로 나갔다.
옷자락 바람에 날리며 도강객으로 붐비던 나루터에 나가보니 어부의 집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누르스름하게 피어오른다.
수풀 뒤편에 떠오른 초승달은 날아가는 모양새이고, 뱃머리 쪽에서는 한기조차 느껴진다.
과객도 어부도 사라진 강가는 적막하다.
그때 마침 물새가 그 적막함을 깨면서 울고, 바람결에는 언덕에 핀 꽃향기가 실려 온다.
날이 저물었다. 멀리 떠난 그 사람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행여나 이 나루터를 통해 올까 기대했으나 괜한 바람이었다.
보람도 없이 그리워하며 속만 태울 때 강가의 고즈넉한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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