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06. 03:0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밤비 밤비가 나를 속이고 자는 새 부슬부슬 몰래 내렸네. 아침에 보니 꽃이 눈물에 젖어 긴 가지를 붉게 드리웠네. | 夜雨 夜雨如相欺(야우여상기) 乘睡暗霏霏(승수암비비) 曉看花淚濕(효간화루습) 紅亞最長枝(홍아최장지) |
정조 순조 연간의 문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1826)가 60세 때 지었다. 무덤덤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꽃잎 하나에 마음이 움직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왔더니 함초롬히 젖어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뻗어 나온 꽃가지는 붉게 핀 꽃의 무게에 처져 있다. 머리 수그린 채 울고 있는 젊은 처자의 모습인 듯 남아 있는 잠결을 확 깨운다. 그랬구나. 지난밤 자는 사이에 기척도 없이 비가 내렸다. 남이 눈치챌까 봐 숨죽이고 내린 비나 고개를 떨구고 눈물 흘리는 꽃에게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가 보다.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어도 붉은 꽃잎 무더기에 마음이 설렌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민의 世說新語] [416] 잠린소미 (潛鱗燒尾) (0) | 2017.05.18 |
---|---|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강 언덕 저녁 산보 (0) | 2017.05.13 |
"학포 양팽손의 그림일까"..日서 500년전 조선 산수화 찾았다 (0) | 2017.05.08 |
실학자 홍만선이 기록한 기상천외한 건강 관리법 (0) | 2017.05.06 |
[김원중의 고전산책] <사기> '화식열전'을 다시 들춰보는 이유 (0) | 2017.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