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읽는 우리역사-16]
나이가 들면서 흰머리가 늘지만 이를 감추려고 매번 염색을 하는 것은 적잖은 고역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염색하는 대신 빗질을 자주 했다. 하루 1000번씩 빗질을 하다 보면 머리털이 희어지지 않을뿐더러 두피도 건강해졌다.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매일 빗질을 해대는 것도 정상적이지는 않을 터.
흔히 고환은 차게 해야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오히려 이를 따뜻하게 해야 유익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두 손으로 고환을 감싼 뒤 호흡을 천천히 1000번까지 하면 양쪽 고환 속 액체가 허리로 흘러들어가 체력을 강하게 한다고 믿었다. 이슬람교인들의 경우 고환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유일한 보양법이라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에 소개된 건강관리법이다. 책은 농림축잠업은 물론 주택, 건강, 의료, 취미, 흉년 대비 등 농촌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총망라된 농가경제 백과사전이다. 총 4권 4책으로 이뤄져 있다. 당대 농업기술 수준과 함께 농가생활의 모습, 민속 등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당시의 실학사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사연구, 생물학사, 의학사, 약학사 연구에도 참고가 된다.
밥 먹은 뒤 즉시 눕거나 종일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기혈을 막아 수명을 줄인다. 항상 손으로 배를 수백 번 문지르고 고개를 뒤로 젖혀 기운을 수백 번 내뿜으며 느릿느릿 수백 보를 거닐어 음식을 소화시켜야 한다.
뜨거운 것을 먹으면 뼈가 손상되고 찬 것을 먹으면 폐가 손상된다. 음식은 사시를 막론하고 항상 따뜻해야 한다. 여름엔 소화가 더디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름철에는 음식물을 적게 먹고 날것과 찬 것을 멀리해야 한다. 오미(五味,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쓴맛)가 강한 음식과 구운 음식은 비장, 간, 폐 등 장기를 망친다.
음식 섭취에는 금기사항이 있다. 메밀과 돼지고기를 같이 먹으면 머리털이 빠지며 쇠고기와 돼지고기 또는 막걸리를 동시에 섭취하면 촌충이 생긴다. 감이나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아야 한다. 개고기는 마늘과 함께 먹으면 해롭다고 책은 권고한다.
고기 중에서는 사슴고기를 최고로 쳤다. 사슴은 신령한 풀을 먹어 다른 육류와는 다르다고 책은 기술했다. 사슴고기를 요리하는 방법은 구이와 곰탕, 국, 포 등 여느 육류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슴은 혀와 꼬리를 곰탕 재료로 활용했다. 꼬리의 경우 절임용으로도 썼는데 칼로 꼬리의 털을 깎아내고 뼈를 발라낸 뒤 그 속에 소금을 넣어 막대기에 끼워 바람에 말린다.
고기 하면 개고기가 빠질 리 없다. 개고기는 누런 것이 우리 몸을 보호하며 검은 것은 누런 개에 못 미친다. 책에서는 호견(糊犬)이라는 독특한 요리법을 소개한다. 개 한 마리를 잡아 깨끗이 씻어 뼈를 발라내고 소금, 술, 식초, 양념을 적당히 쳐 고루 섞은 뒤 동아(冬瓜, 박과의 식물) 속에 넣는다. 김이 새지 않게 동아를 잘 밀봉해 겨를 태운 불 속에 하루를 재우면 된다고 설명한다.
술은 적게만 마신다면 살결을 윤택하게 하고 혈기를 소통시킨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느껴지면 오히려 토하는 것이 좋다. 술을 마신 뒤 냉수나 냉차를 마시면 신장에 냉독이 들어가 좋지 않다.
건강하게 살려면 건강한 성생활도 중요하다. 책은 성행위를 할 때 금기사항을 나열한다. 추울 때, 더울 때, 배부를 때, 취했을 때, 노했을 때, 두려울 때, 피곤할 때, 소변이 마려울 때, 목욕 직후, 생리중일 때, 애정이 없을 때 억지로 성행위를 할 때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나이가 많거나, 오래된 질병이 있거나, 입술은 얇으면서 코는 크거나, 이가 엉성하고 머리털이 노랗거나, 음모가 너무 억세거나, 소리가 웅장하거나, 살갗이 거칠고 기름기가 없거나, 성격이 온화하지 못하거나, 성품이 사나운 사람은 성행위가 건강을 해친다고 강조했다.
3권 구급(救急)편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묘책이 나온다. 목매어 죽은 자는 숨이 넘어갔더라도 아랫배가 따뜻하면 살린다. 급히 닭의 볏을 찔러 피를 내서 입 안에 떨어뜨려 주면 그 즉시 정신을 차린다. 남자는 암탉, 여자는 수탉을 사용해야 한다. 익사한 사람도 살릴 수 있다. 소 한 마리를 끌어다가 죽은 사람을 가로 싣되 배가 소의 등에 닿도록 엎어 싣고 소를 서서히 몰고 가게 하면 물이 나와서 깨어난다.
살면서 이런 일도 생길까 싶지만 눈알이 튀어나왔을 때, 고환이 터졌을 때, 창자가 밖으로 나왔을 때 대처법도 책은 친절하게 건넨다. 어떤 이가 말에서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쇠에 고환이 찢겨 알맹이가 빠져나왔다. 다행히 고환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의원이 고환을 천천히 넣고 납거미(거미의 일종)를 잡아 짓이겨 상처에 계속 붙여주자 전과 같아졌다. 소에게 받혀 창자가 나왔다면 참기름으로 장을 씻어 손으로 밀어넣은 다음 상백피(뽕나무 뿌리를 말린 껍질)를 뾰족하게 해 뱃가죽을 봉합한다. 그리고 상처 위에 혈갈(血竭) 가루나 또는 백초상(百草霜) 가루를 뿌려준다. 눈알이 빠졌을 때는 신경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눈꺼풀 안에 집어넣고 생지황(生地黃)을 찧어 눈 주위에 두껍게 붙여줘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흉년 등으로 기근이 다반사였다. 구황(救荒, 흉년 대비)편에서는 기근을 면하는 방안을 말한다. 굶주림을 면할 수 있으면서도 속에도 편한 것으로 솔잎을 든다. 솔잎과 콩을 10대 1 비율로 섞어 말린 뒤 가루로 만들어 쌀가루를 약간 혼합해 죽을 쑤면 시장기를 면할 수 있으며 맛도 감미롭다.
4권 잡방(雜方)편에서는 다양한 삶의 지혜를 공개한다. 왜적이나 도적을 만났을 때 동반한 갓난아기가 울게 되면 큰 곤경에 처한다. 실제 전란 때 적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우는 아기를 길가에 버리는 슬픈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책은 동의보감을 인용해 감초 달인 물이나 꿀물에 적신 솜뭉치를 아기의 입 안에 넣고 동여매 주면 된다고 했다. 아이가 단맛을 빨아 소리를 내지 않으며 솜뭉치는 부드러워 아이의 입을 상하게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노비는 큰 재산이었다. 노비가 도망가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노비가 도망가지 않도록 주술적인 방법에 매달렸다. 책은 "물류상감지(物類相感志)에 도망한 노비의 옷을 가져다가 우물 속에 늘어뜨리면 노비가 저절로 돌아온다고 적혀 있다"고 했으며 또한 "본초(本草)에 도망자의 머리카락을 물레 위에 놓고 돌리면 혼란스러워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한다고 기록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풍속에는 종이에다 도망자의 이름을 적어 대들보 위에 붙여 놓는데 모두 같은 유형"이라고 허황됨을 비판했다.
책은 더 놀랍게도 월경의(月經衣)를 물에 빨아 즙을 마시면 음열(陰熱,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나는 증세)을 치료하는 데 제일 좋다고 했다. 처녀의 첫 번째 월경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지극한 보배라고까지 했다. 호랑이 두개골로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면 악마를 물리치고 이를 문 위에 달아두면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만선(1643∼1715)=1666년(현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40세인 1682년(숙종 8) 음보(蔭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훈에 의해 등용하는 제도)로 벼슬길에 올랐다. 인천·부평 부사, 상주목사를 지냈다. 농업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 중농적 실학자의 선구자로 꼽힌다.
[배한철 영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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