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29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오동나무 집 앞의 오동나무 사랑한 것은 저물 무렵 맑은 그늘 드리워선데 한밤중에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뜬금없이 창자 끊는 소리 낼 텐데. 詠梧桐 愛此梧桐樹(애차오동수) 當軒納晩淸(당헌납만청) 却愁中夜雨(각수중야우) 翻作斷腸聲(번작단장성) |
17세기 여성 시인 울산 이씨(李氏)가 지었다.
이씨는 고성군수를 지낸 김성달(金盛達·1642~1696) 소실이다.
마당 한쪽에 오동나무가 서 있다. 집 주변의 꽃과 나무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저녁 무렵이면 으레 방안으로 들어오는 뙤약볕을 막아주는 서늘한 그늘의 넓은 품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오동나무를 때로는 베어버리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다.
밤이 깊어 비라도 내리게 되면 큰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잠을 깨우고,
잠을 깨면 빗소리가 임을 그리는 마음을 불쑥 일깨워 가슴을 저리게 하여 긴긴 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겨우 다독거린 임을 향한 그리움을 흔들어놓을 때 오동나무는 정말 얄밉다.
이씨는 본래 시를 전혀 짓지 못했는데 남편이 죽은 뒤 당시(唐詩) 수백 수를 외우고서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400여 개의 글자만으로 시를 지었으나 아름다운 작품을 다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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