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9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젊어서부터 노동·민주화 운동을 해온 주대환(63)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2월 낸 책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에는 "참으로 통곡하고 싶다"는 대목이 있다.
그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공무원·교사는 대부분 강력한 노조의 보호 아래 꾸준히 임금이 상승해 소득이 세계적인
수준까지 올랐"지만 하도급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노조 보호를 받지 못해 임금이 오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광주 기아차 정규직(연봉 9700만원)과 사내하도급(5000만원), 2차 협력사(2800만원) 근로자 연봉을 비교하면서
"빈부 격차가 빠르게 늘어나게 만든 원흉 중 하나가 (연대 의식이 없는) 노동운동이라는 것이 청년들의 생각"이라며
통곡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는 "우리가 젊은 시절 위장 취업을 하고, 온갖 짓을 다 하면서 노동운동을 도운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기아차 노조가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갈등을 겪다 이들을 떼어내는 노조규약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진짜 통곡했는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임기 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제로 시대까지는 몰라도 비정규직을 줄여 양극화 격차를 줄여나가자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와 대기업·공기업 노조 문제가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도 있다는 점이다.
노조가 파업해 임금을 올리면 대기업은 하도급업체 쥐어짜기로 수지를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노동계가 요구한 성과연봉제 폐지, '양대 지침' 폐기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성과연봉제는 전 정부가 공공 부문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고, 양대 지침은 현저한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폐기하면 문 대통령은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는 셈이다. 여기에다 문 대통령은 '1호 업무 지시'로 강조한 일자리위원회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대표를 포함했다. 한국노총과는 대선 때 정책연대 협약까지 맺었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공기업 노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난 1월 본지 인터뷰에서 "고임금 소득자들이 파업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극히 일부다"라고 말한 것에서 생각의 단면을 엿볼 수는 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족 노조, 정규직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 사람들이 양보하면 비정규직 임금이 올라가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양보하게 하겠다는 공약이나 발언은 하지 않았다.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사회존중 기본계획'을 만들겠다는 내용 정도가 공약집에 들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에 정규직 노조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은
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공기업 노조에 대해 어떤 속내를 갖고 있는지,
이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와 절제를 요구할 구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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