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탄핵 위기 트럼프

바람아님 2017. 5. 16. 16:00

(조선일보 2017.05.16 선우정 논설위원)


작년 미국 대선 토론회가 '최악'의 평가를 받은 건 트럼프 후보 탓이 컸다. 

음담패설이 폭로돼 궁지에 몰리자 힐러리 후보 남편 빌 클린턴의 옛 추문을 끄집어냈다. 

클린턴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여성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TV 토론에선 "나는 말로만 했는데 그는 행동으로 했다"고 했다. 

토론장 관객석에 있던 남편 클린턴의 떨떠름한 표정이 화면 가득 부각됐다. 

1억명이 봤다고 한다. 


▶미 의회가 탄핵안을 처리한 건 지금까지 두 건이다. 

1868년 장관 해임 문제로 의회와 충돌한 앤드루 존슨과 1998년 음습한 사생활이 천하에 들통난 클린턴이다. 

둘 다 하원에서만 가결되고 상원에서 부결됐다. 

일명 '지퍼 게이트'로 불리는 클린턴 탄핵은 막장 극이었다. 

그럼에도 살아난 건 음란 행위가 헌정 질서를 망가뜨렸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 탓이었다. 


[만물상] 탄핵 위기 트럼프

▶닉슨 대통령이 여기에 끼지 않는 건 탄핵 직전에 하야했기 때문이다. 버텼다면 확실히 탄핵됐을 것이다. 

클린턴이 자신의 성행위만 '섹스'가 아니라고 믿었듯이 닉슨은 자신의 도청은 관행이라고 확신했다. 

사건을 은폐하는 것, 은폐하자는 밀담(密談)을 녹음하는 것, 그 녹음을 다시 은폐하는 것도 그랬다. 

이걸 밝히겠다는 특별검사를 해임한 것도 대통령의 당연한 권한이라고 봤다. 

미국민은 난봉꾼보다 이런 자가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문대로 역사에 어두운 듯하다. 

닉슨의 특검 해임을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한다. 토요일 밤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만행으로 닉슨의 운명은 결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FBI 국장을 해임하자 미국인은 예상대로 닉슨을 떠올린 모양이다. 

'화요일 밤의 대학살'이란 이름이 붙었다. 야당은 탄핵 카드를 꺼냈다. 

FBI 국장은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 진영을 도왔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국장 해임을 '진실을 덮으려는 만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혐의는 닉슨보다 악성이다. 여기에 닉슨이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저질렀던 것 같은 실책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트럼프는 날이 갈수록 주변 충고에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합리적 측근을 적(敵)으로 돌린 닉슨과 성향도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금방 결판이 날 가능성도 낮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 하야까지 2년이 걸렸다. 

클린턴에 대한 성추행 고소에서 탄핵까지는 4년이 걸렸다. 좌충우돌하다가 임기를 끝낼 것이라고들 한다. 

그 기간 동안 트럼프의 울화통이 우리 쪽을 향해 터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