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청와대 폴리페서
동아일보 2017.05.13. 03:01▷캠퍼스에 있어도 행정을 맡으면 연구를 멀리 하기 쉬운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연구와 강의를 제대로 할 리 없다. 선거 때만 되면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대선 주자에게 줄 대는 교수는 늘어만 간다. 집권에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고, 성공하면 ‘대박’을 치기 때문이다. 2013년 국회법이 개정돼 20대 총선부터 국회의원이 되려면 교수직을 사임해야 한다. 총리나 장관, 청와대 비서관 등 임명직은 휴직한 뒤 복귀할 수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두고 폴리페서 논란이 뜨겁다. 2008년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던 서울대 교수를 향해 그가 “교수 1명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 교수 4명이 1년짜리 안식년을 반납해야 한다”고 한 비판이 부메랑이 됐다. 조 수석 논리대로라면 그가 휴직하면서 피해 보는 교수는 없을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파국인지 조국인지, 서울대 교수 사퇴해야 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2002∼2012년 조 교수의 논문 인용 횟수가 법학 분야 1위였다는 옹호론도 있다.
▷조 수석은 ‘학자 정치인’ 서애 유성룡을 삶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며 자신의 ‘연구실 정치’를 합리화했다. 민정수석이 되자 페이스북에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는 마지막 글을 올렸다. 또 민정수석 일은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기자 문답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각종 저서와 발언을 통해 현실정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친문(친문재인) 성향을 드러냈다. ‘교수는 정치하면 안 되느냐’고 진작 커밍아웃 했다면 지금처럼 옹색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진 논설위원
[만물상] 내가 하면 로맨스?
조선일보 : 2017.05.13 03:11
대학교수의 정치 참여에 대한 비판은 오래됐다. 선거 때마다 있던 비판을 대학 사회의 본격 쟁점으로 끌어올린 글이 있다. 서울대 신문에 실린 '교수와 정치-지켜야 할 금도(2004년)' '출마 교수의 휴·복직에 대한 내규가 필요하다(2008년)' 두 편이다. '교수도 정치할 수 있지만 원칙이 있다'고 했다. 원칙에 어긋나는 사례로 '시민운동을 하다 공천받는 경우' '연구를 방치한 채 정치권과 관계하다 출마하는 경우' 등을 들었다.
▶두 편 다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가 썼다. 2008년엔 논설로 멈추지 않았다. 동료 교수들과 '폴리페서(정치 교수) 윤리 규정' 건의문을 만들어 학교에 제출했다. 발단이 된 사례가 악성이었다. 한 교수가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복직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그 교수를 향해 "정치를 위해 학교와 학생을 버렸다"고 했다.
▶건의문엔 특이한 점이 있다. 선거에 나가는 선출직 공무원만 겨냥했다. 임명직을 뺀 이유에 대해 "대법관, 국제기구 고위직은 전공 적합성이 있고 한국 대학의 국제 위상을 높일 수 있어 법이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선거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 행정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폴리페서' 논란의 핵심인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물론 민정수석 자리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2004년 글에선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교수가 당선되면 4년 동안 대학을 떠나 있게 되는데, 해당 교수가 사직하지 않으면 그 기간 동안 새로 교수를 충원할 수 없게 된다.' 2008년엔 "교수 1명이 (4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 교수 4명이 1년간의 안식년을 반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과 동료 교수가 짊어져야 할 이런 부담은 임명직이건 선출직이건 다르지 않다. 조 수석은 지금 교수로선 안식년이다. 민정수석에 임명되자 "규정대로 휴직 발령이 나면 따르겠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책 서문에서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썼다. '최전방에서 육박전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어제 트위터엔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육박전 각오를 밝혔다. 검찰 출신이 아닌 조 교수는 검찰 개혁에 적격일 수 있다.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했던 잣대에 자신이 문제가 된 경우엔 '맞으며 간다'는 식의 동문서답이 아니라 좀 더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게 좋겠다. '남이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불륜'이어야 공직자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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