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瑞氣) 충만한 낙산(駱山) 기슬게 자리 잡은 안윽한 이화장(梨花莊)의 안주인 후란시스커 여사는 부군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二十일 왕방한 본사 기자를 흔연히 마저드려 다음과 가티 말하엿다.'
1948년 7월 21일. 대한민국 첫 대통령 선거를 치른 다음 날 신문 기사 일부다. 긴 문장에 표기가 예스럽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남편'의 높임말 '부군'.
신문에는 존칭이 드물다.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기 때문. 자연히 아내·남편을 '부인(夫人)' '부군(夫君)'으로 잘 높이지 않는다. 보기처럼 대개 사회 지도층에게 쓰는데, 그것도 상황 따라 매체 따라 달라 혼란스럽다. 게다가 '남녀 차별'도 문제다.
이번 대선 기간에 언론사는 남자 후보의 배우자(配偶者)를 부인, 여자 후보의 배우자는 남편이라 쓰곤 했다. 균형을 잃은 것이다. 같이 부인·부군 하든가, 아내·남편 하든가…. 무슨 근거로 높이느냐도 뚜렷하지 않다. 비슷한 보기가 사람이 죽었음을 알리는 부음(訃音). 흔히 남자의 배우자는 '부인상(喪)'으로, 여자의 배우자는 '남편상'으로 쓴다.
이렇게 보면 혹시 역(逆)성차별인가? 한데 부인·부군이 엄밀히 '상대를 높여 그 배우자를 일컫는 말'이므로, 도리어 '남존여비(男尊女卑)' 의식을 드러내는 건 아닐는지.
해서는 안 될 존대도 있다.
'총격범은 교사의 남편으로 알려졌으며, 부인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격범이다. 그런 장본인(張本人)이나 아내나 높일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자기 배우자를 높여 가리키는 일 역시 피해야 한다. 제 부인(부군)입니다? 남우세스럽다. 다만, 예전 사대부처럼 자기 처를 '부인' 하고 부를 수는 있겠지. 어려운 사이 아니면 '제 짝입니다' 하고 소개해도 괜찮을 듯싶은데. 어떤 사전은 '짝'이 '배필(配匹)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했다. 그럼 배필은? '부부로서의 짝'이란다. 논리적 오류도 오류지만, 짝이 어째서 속되다 할까.
결혼기념일도 다가오는데, 어떤 말이 듣기 좋은지 물어볼거나. "부인, 나를 배필로 맞아 행복하시오?" "마누라, 나랑 짝 맺어서 행복해?" 아니, 속 차리자. 콧방귀 뀌지나 말아주오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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