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0 오윤희 국제부 기자)
빛바랜 사진 속 아랍계 영국 소년은 축구팀 동료들과 나란히 서서 활짝 웃고 있다.
소년과 같은 팀에서 뛰었던 한 친구는 소년을 '축구와 화학에 재능이 뛰어났던 아이'라고 평했다.
"성격도 좋아서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었죠."
친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소년의 과거다.
약 40년 뒤 52세 칼리드 마수드는 런던 주요 관광지인 웨스트민스터 다리 인근에서 승용차로 행인들을 들이받는
테러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4명이 죽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마수드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에서 테러범으로 변모하기까지 과정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homegrown terrorist)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본이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최근 유럽을 공포로 떨게 한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고 분석했다.
주로 이민자 2세 출신으로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에 부딪혀 사회 구성원으로 동화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사소한
범죄를 일으켜 감옥에 들어간 뒤 급진적 이슬람 사상에 물들게 된다는 것이다.
마수드도 정확하게 이 과정을 거쳤다.
영국 런던경찰청은 3월23일(현지시각) 전날 런던 의사당 부근에서 테러를 벌인 범인은
영국 남부 켄트 출생의 52세 남성 칼리드 마수드라고 신원을 공개했다.
사진은 마수드가 전날 무장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몇 년간 서구 사회에서 발생한 테러는 90% 이상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주도했다.
2015년 130명이 사망한 파리 테러, 2013년 260여 명이 부상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도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일으켰다.
테러의 위험은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다 이민자 차별과 다문화 정책의 실패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성장을 도운 자양분이 됐다.
우리 사회는 이런 내부의 위험에서 과연 자유로울까.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현재 200만명을 넘어섰지만, 우리의 다문화 정책은 사회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얼마 전 콩고 난민 출신 욤비 토나 광주대 교수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한국 다문화센터에 실제로 '다문화'는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말 배우고 김치 어떻게 담그는지 배운다. 쉽게 말해 한국문화센터다"고 쓴소리를 했다.
게다가 시대착오적인 인종차별, 외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참담한 수준이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이거나, 짙은 피부색을 가진 이들일수록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지난달에는 한 60대 남성이 자동차 사고를 당할 뻔한 어린 손자를 구해준 콜롬비아인에게 감사의 말 대신
인종차별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지구촌'인 21세기를 살아야 하는 우리가 과거처럼 쇄국정책을 고집했다가는 기술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민자와 더불어 사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가 다문화에 대한 포용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그 대가가 부메랑 되어 돌아올 게 뻔하다.
서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바깥의 적(敵)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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