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1 강형기 충북대 교수·행정학)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이 야기한 징벌형의 선거로 새 정권이 탄생했다.
징벌형 선거에서는 전 정권의 패착이라는 마이너스 효과가 유권자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그래서 징벌적 선거로 집권한 정권은 내일의 기회가 아닌 어제의 문제 처리에 급급할 우려가 있다.
국민이 대통령 탄핵 과정과 선거를 지켜보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감과 정치가에 대한 불신이 가중된 것도 넘기 어려운
언덕이 됐다. 국민이 믿고 따르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새 정권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발족했다.
2014년에 세계의 여러 나라를 비교 조사한 국제사회조사(ISSP)에서도 우리 정치 지도자의 신뢰도는 바닥이었다.
"대체로 우리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응답자의 20.2%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무려 64.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더 이상 붕괴할 여지도 없는 상태에서 탄핵 정국으로 더욱 추락한 것이다.
국민은 믿는 만큼 기대하며, 기대하는 만큼 믿는다.
국민이 정치가를 불신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저하되고 자원 결집도 어려워진다.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일수록 그들의 모자라는 능력을 포퓰리즘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민의에 민감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민의에 민감한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례로 생각해보자.
1995년 고베(神戶)에서 지진 발생 이틀 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현장을 방문하자, 많은 국민은 너무 늦게 갔다고
맹비난했다. 당시의 내각 지지율은 36%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간 나오토 총리는 사고 다음 날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총리가 재난 현장에서 할 일도 없는데 너무 빨리 가서 구조에 방해만 주었다"고 성토했다.
당시 내각 지지율은 22%였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아베 신조 총리가 9일 후에 현장을 방문하자 많은 국민이 그렇게 해야 한다며 박수를 쳤다.
당시 내각 지지율은 56%였다.
사람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국민은 구체적인 정책보다 전체적인 이미지로
정부를 평가한다. 무능하고 부패하다고 여겨지는 정부를 국민은 따르지 않는다.
사회가 분열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선 무엇 하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된다.
따라서 새 정부는 정권 내부부터 '창조적 파괴'를 실천함으로써 국민과 함께하는 유능한 정부임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너진 공공성, 가라앉은 우리나라를 곧추세우려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보다 양녕대군을 옹립하려 했던 황희를 정승으로 기용한 세종처럼,
정부와 전쟁을 벌인 반군의 수괴 에나모토 다케아키를 장관으로 기용한 메이지(明治) 정부 지도자들처럼
인사로 보여주어야 한다.
믿고 싶은 정부를 염원하는 국민을 생각한다면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거지가 거지 생활을 청산하려면 거지 보따리를 버려야 하듯 기득권의 보따리를 버려야 힘을 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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