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기자의 시각] 말로만 "이스라엘처럼!"

바람아님 2017. 5. 7. 08:11
조선일보 2017.05.06. 03:09
노석조 국제부 기자

유대인에게 금요일 해질 무렵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답장 받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히브리어로 '샤밧'이라고 하는 안식일이 금요일 해 질 녘 시작해 다음 날 일몰까지 이어지는데, 그동안 유대인은 휴대폰 등 전자 기기를 꺼놓고 손도 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유대인은 집에 만찬을 차리고 지인을 초대해 교제 시간을 갖는다. 캄캄한 밤, 식탁 위 노란 촛불에 비친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와인 잔을 기울이다 보면 시나브로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뉴욕 출신 유대인 친구의 '샤밧 만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친구는 "너 이거 몰랐지?" 하면서 이야기 하나를 꺼내놓았다. "유대인끼리는 뉴욕(New York)을 '주(jew)욕'이라고 불러. 유대인이 오래전부터 정착해 살았고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뉴욕을 주름잡는 주류층이 유대인이기 때문이지."

맞는 말이다. 유대인이 미 사회에 큰 영향력을 쥐고 있다는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 연방준비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현 15대 의장인 재닛 옐런, 전임인 벤 버냉키, 13대 앨런 그린스펀, 12대 폴 볼커가 모두 유대인이다. 미 주요 언론사의 의사 결정권자, 논설위원 상당수도 유대인이다. 로비 단체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는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워싱턴DC 돌아가는 상황을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 역사상 유대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백악관 주인 자리에 가장 가까이 간 유대인이라면 작년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인 버니 샌더스 의원 정도다. 왜 그런지를 두고 '미국이 기독교 기반의 나라라서' 등 여러 설이 있긴 하지만, 명쾌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최근 유대인 두 명이 백악관에 입성했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부부다. 이방카는 쿠슈너를 따라 유대교로 개종하며 유대인이 됐다. 미국 역사상 첫 유대인 퍼스트 패밀리 멤버(대통령 가족)가 탄생한 것이다. 둘은 최근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돼 국정에 정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에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들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 국익에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감이다.


이스라엘은 종종 자주국방, 소신 외교의 나라로 거론된다. 최근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이 "이스라엘처럼 ○○하겠다"며 안보 공약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빠트린 채 '이스라엘처럼!'을 외친다. 이스라엘이 과감하게 적국의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고, 주변 반대를 뚫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미국을 뒤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힘에 의한 안보 못지않게 대미(對美) 로비를 중시한다. 나라를 지키는 힘에는 동맹과 협력하고 지원을 이끌어내는 지혜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