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후 조선사에서는 두 번의 반정(反正)이 있었다. 이 때 반(反)은 ‘반대한다’가 아니라 ‘돌아갈 반(返)’의 뜻이다. 정(正), 즉 올바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연산군을 폐위한 중종반정(1506),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1623)이다.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반정은 혁명(역성혁명, 즉 왕조교체)과 달리 왕조는 유지하면서, 무도한 통치자를 교체하기 위해 왕가의 다른 사람을 왕으로 옹립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력은 물론 중요하나, 더 중요한 것은 반정의 명분, 즉 여론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과 대왕대비의 윤허 등, 승계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반정정권이 집권 후 잘했느냐는 논외로 치고, 어쨌든 최소한의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결격사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통치자를 교체했다는 점에서, 전근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정치현상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사태를 보며 왠지 ‘반정’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서울도심에 모인 수십만의 시민은 우려와 달리 폭력을 끝까지 자제했다. 나는 그 놀라운 장면을 보며 1987년 대선현장을 떠올렸다. 당시 모 야당대통령 후보의 군중집회에 끼어 있었는데, 한 사람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마이크를 가지고 와 “발언할 사람!”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한 30명 정도의 사람이 마이크를 둘러싸고 육박전을 개시했다. 치고받고 욕하고 머리끄덩이를 잡아 당겼다. 개중에는 낮술에 얼굴이 벌건 사람도 있었다. 마이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결국 아무도 발언하지 못했다.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희망한다며 모여든 사람들의 그 모습에, 아주 깊이 낙담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2016~2017년의 광화문 시민은 30년 전의 그 군중이 아니었다. 의사표현은 치열한 백병전보다 격했으나, 그러기 위해 마이크 앞에서 줄을 섰다. “청와대로 진격!”을 외쳤지만 시민들은 진짜로 청와대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태극기집회도 나를 놀라게 했다. 많은 촛불시민들이 그들을 ‘이등시민(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으로 낮춰 봤지만, 시청 앞에서도 질서와 절차는 지켜졌다. 안타깝게도 몇 명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우발적 사고 때문이지 폭력이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집회규모도 기록적이지만, 이 정도의 시위에 체포자와 희생자가 이렇게 미미한 것도 길이길이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에 시민 스스로가 “그래, 제대로 된 나라다”고 답한 걸로, 나는 본다.
명분을 장악하여 여론을 획득했다면, 반정의 다음 단계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통치자를 교체하는 것이다. 헌법이 없던 조선왕조에서는 이 과정에서 폭력과 희생이 발생했지만, 대한민국에는 헌법이 있다. 통치자가 헌법을 훼손했다고 탄핵하는 마당에, 헌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그걸 ‘옳은 것으로 돌아간다(反正)’고 할 수 있겠는가. 헌법에서 정한대로 국회는 탄핵소추를 표결했고, 헌법재판소가 최종판단을 내렸다. 어떤 사람은 환호했고, 어떤 이는 울음을 삼켰다. 불복의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지금 헌재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은 없고, 자유한국당이나 새누리당도 정말 불복한다면 대선에 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맘에 안 드는 결론에 불평한 것이었지, 진짜 불복은 아니었다.
시끄럽고, 불안하고, 때론 혐오스러웠지만 이만하면 무탈하게 진행되어 왔다.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이게 다 우리 사회의 힘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권의 저 엉터리 리더십 하에서도 한국 사회는 그럭저럭 굴러왔고, 꽁꽁 숨어있는 리더십의 추태를 그래도 3년 반 만에 탄로나게 했다. 그리고 국가리더십이 ‘붕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너진 상황 속에서도, 솔직히 말하면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거나 정말 대단한 위기감에 떨었던 시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 일본인 친구는 내게 “어떻게 이 난리 속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사재기를 안 하지?”라고 물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해 식구들한테 “뭐라도 사 놓을까?”라고 했다가 평소처럼(?) 침묵 속에 왕따를 당했다.
몇 달 동안 요란했지만, 사실은 누구나 우리 사회의 복원력을 믿고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오로지 명분과 여론, 그리고 헌법절차만으로 이 사태를 고통스러웠지만 신속하게 수습했다. 폭력과 재력은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느새 탄핵과 불복이라는 말은 쏙 사라지고, 모두들 대선후보들에 눈이 가있다. ‘정유반정’도 막바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화자찬할 때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반정정권이 그 후 반드시 ‘반정’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쫓아낸 중종정권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으나(하기야 어느 정권이 연산군만 못하랴), 광해군 후의 인조정권은 삼전도의 굴욕을 초래하는 등 과연 옮음으로 돌아갔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정유반정이 완성되려면 다음 정권이 반정의 정신을 투철히 하여, 모든 국민이 지켜준 ‘제대로 된 나라’를 ‘더 멋지고 훌륭한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반정은 계속될 것이다.
<박훈 서울대 교수·동아시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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