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03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40여 년 전 스웨덴으로 입양된 여성을 만난 일이 있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찾고 싶어 고국을 찾아왔다. 영국인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였다.
입양인인 아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아내는 참 행복하지요?" 대답이 의외였다. "아뇨, 천만에요."
나는 "아니 훌륭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데…"라고 되물었다.
"매일 길에서 '아시아 여자가 스웨덴 말을 어떻게 그리 잘하세요'라는 말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세요"라는 남편 설명에
필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아내가 16세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이 있었다"고도 했다.
해외 입양아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피부색 등 여러모로 생김새가 다른 부모·형제와 성장하면서
'왜 나는 이들과 다르게 생겼을까'라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자아(自我)가 싹틀 무렵부터 가족과 사진 찍는 것을 기피하고 찍더라도 맨 가장자리로 뒷걸음질치기 일쑤라고 한다.
그 아픔은 자신을 외국으로 입양시킨 부모, 고국에 대한 원망으로 커갈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DB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한 가정마다 한 아이를 입양하여 잘 기르자'는 취지로 제정된 날이다.
6·25전쟁 후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운 가난한 한국 형편에선 국외 입양이 최선이었다.
외국에 가서 좋은 부모 만나 배불리 먹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매년 300~400명의 아동을 외국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신을 입양 보낸 이유를 우리에게 묻는다. "왜 우리를 외국으로 보냈습니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8000달러에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나라가 왜 우리를 키우지 못합니까.
낮은 출산율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나라에서 말이에요" 하면 할 말이 없다.
이제 정부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처럼 아이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기르지 않고 외국으로 입양 보내는 나라가
우리 말고 있을까.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우리 아이들의 국외 입양을 중단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입양되는 아동은 대부분 미혼모의 자녀들로, 매년 100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미혼모 중에는 사회적 편견과 가족관계 단절 우려에도 용기 있게 자녀를 키우는 이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양육수당은 고작 월 12만원이다. 턱없이 적은 액수다.
보육원 등에 맡겨진 아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설에 지원하는 비용은 1인당 월 150만원이다.
그 금액의 절반만이라도 지원하면 양육을 포기당하는 미혼모 자녀는 크게 줄 것이다.
국내 입양도 활성화해야 한다.
자녀를 입양해 키우는 부모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은 월 15만원이다.
이를 올리면 가정에서 입양도 늘고, 양육을 포기당하는 아동 수도 크게 줄 수 있다.
어린이헌장은 '아동은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가족 안에서 행복하게 성장한 아이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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