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29 이동훈 정치부 차장)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백원우 전 의원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누어
유명해진 인사다.
그는 당대의 권력을 향해 "어디서 분향해. 사죄해"라고 외친 뒤,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혀 끌려나갔다.
장례식 방해 혐의로 약식 기소된 그는 오랜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백 비서관 행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판단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의 행동은 지나쳤지만, 그런 돌출이 없었다면 '노무현의 장례식'은 뒷날 뭔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게 틀림없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 친노는 부활했다.
우리 정치사에 거의 동일한 인물들이 시간을 건너뛰어 정권을 다시 만들어낸 경우는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람들이 10년 뒤 이명박 정권을 만드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중심 세력은 확연히 달랐다.
친노가 다시 살아난 이유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친노가 사람보다 이념 중심으로 뭉쳐있기 때문"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그악하고 위선적이어서"라고 했다.
필자는 당시 백원우가 숨기지 못하고 드러냈던 '복수의 결기'가 친노 부활의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친노는 마음속 깊이 결기를 구겨넣은 채 폐족(廢族)을 선언하고 물러나, 쓸개를 씹으며 선잠을 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의외로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수년간 결기를 다지며 거듭해온 도상(圖上) 훈련의
결과일 수 있다.
2009년 5월 29일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과하라며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갑을 찬 채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나오는 모습이 공개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친박 인사 누군가는 이 상황에 대해 울분을 표출하리라 봤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다. 친박 인사들은 고개 돌려 주군(主君)의 고행을 외면했고,
갑남을녀(甲男乙女)들만 새벽밥 지어 먹고 서초동 법원 앞으로 몰려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죄의 유무(有無)야 법원이 가릴 일이지만, 그를 따르던 인사들의 입에선 "박근혜가 너무 가혹하게 당하고 있다"
"촛불 정권은 더 이상 오버하지 말라"는 일갈이 나오리라 기대했었다.
이미 탄핵이 결정됐고, 대선 결과까지 나온 마당이기에 홀가분하게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치 세력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친박 인사들은 혹여 다칠세라 새 권력 앞에서 몸을 숙였다.
박 전 대통령 덕에 수차례 의원 배지를 달고,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들이었다.
백원우가 결기를 보였던 8년 전에도 일가(一家)의 비행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비난 여론은 지금의 박 전 대통령 못지않았다. 그러나 친노 인사들은 그것을 핑계로 주군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건 법(法), 혹은 옳고 그름 이전에 예의이자 의리였다.
친박 인사들은 자기 욕심 챙기는 대목에선 물러설 줄 모른다.
지난해 총선 참패 뒤 친박이 뒤로 물러났다면 야권이 이 지경까지 왔겠냐고 많은 사람들은 얘기한다.
최근에도 몇몇 친박 인사들이 허물어진 야당 당권을 쥐겠다며 나서려 한다.
그러면서 "이제 친박이 어디 있냐"고 한다. 그런 인사들에게 둘러싸였던 게 박 전 대통령 불행의 시작이었다.
친노와 달리 친박은 역사의 뒤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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