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말해 막말은 건전한 사회의 적이다
이제 선거도 끝났고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 기간에 드러난 어떤 현상은 깊은 우려를 갖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천박한 대통령에게서 전염돼 온 ‘막말’의 문화다. 물론 막말을 주도했던 후보는 대권 장악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가 이끌었던 막말의 문화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상태를 보여준다. 문학이론가 볼로시노프(V. Voloshinov)의 말마따나 “언어는 사회 변동의 가장 민감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구(舊)여권을 대표하는 거대 정당의 후보가 막말과 욕설을 일삼았으며 그것이 나름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와 문화가 얼마나 천박한 수위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령 사상과 철학의 대중적 성장이 일반화된 유럽에서 도널드 트럼프 같은 막말의 정치가는 출현 자체도 힘들었을 것이고 집권은 더욱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막말의 문화가 갖는 첫 번째 문제는 그것이 온갖 종류의 가짜 뉴스 혹은 거짓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는 지난 3월 29일부터 대선 전날인 5월 8일까지 막말을 주도했던 후보가 가장 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이렇게 보면 막말은 거짓말의 다른 이름이다. 막말의 문화가 갖는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합리적 사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막말과 욕설은 분노와 화로 이성적·논리적 사유를 억압한다. 그것은 가뜩이나 합리적 사유 능력이 없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목표물로 삼아 그들의 비논리적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결국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까지 박탈한다는 점에서 야만적이다.
막말은 또한 애초부터 무책임을 전제로 한다. 막말은 특정 대상에 대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비난과 공격만을 기능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막말은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므로 그로 인한 모든 사회적 분란은 나머지 공동체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막말은 그 자체가 대상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모욕을 목표로 하므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정치인과 같은 공인들의 공적 영역에서의 막말은 특정 대상과 국가 전체의 현실에 대한 왜곡을 일파만파 공중화(公衆化)하므로 더욱 위험한 폭력이다.
정치가의 막말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은 그것이 청소년들을 포함한 국민 전체에 토씨 하나까지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육체적·정신적 미성년자들에게 거짓과 비합리와 무책임과 폭력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며, 그것의 반대편에 있는 소중한 가치들, 즉 진실과 합리성과 책임과 사랑을 외면하게 만든다.
막말이 공중(公衆) 언어로 통용되는 사회는 사람을 사물과 다를 바 없는 ‘그것’으로 대하는 사회다. 부버(M. Buber)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나-그것(I-It)’의 관계로 설명했다. ‘그것’은 환대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전유(專有) 혹은 의미론적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평등한 ‘만남’ 속으로 끌어들이는 관계는 ‘나-그것’이 아니라 ‘나-너(I-Thou)’의 관계다. 모든 ‘너’는 또 다른 ‘나’들이기 때문이다.
비판과 막말은 다르다. 건전한 비판은 나와 너를 더욱 숭고하고 존엄한 상태로 이끈다. 그러나 막말은 모든 ‘너’를 ‘그것’으로 격하시키며, 그리하여 모든 ‘나’들조차 ‘그것’들이 되게 한다. 막말투성이의 대선 국면이 악몽이었던 이유는 막말이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공포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막말은 건전한 사회의 적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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