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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8일, 일본 내무성이 전국 부현(府縣)에 무선 통첩을 보냈다. 내무성 경보국장(警保局長) 하시모토 마시미 명의로 나간 통첩의 내용은 ‘외국군 주둔지 위안 시설 정비’. ‘특수 위안 시설을 설치하라’는 공문은 한 마디로 미군 병사들을 위한 매춘 장소를 확보하라는 국가의 지시였다. 공문을 보낸 경시청 간부들은 윤락업자들과 회의를 열어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일본 왕이 방송으로 항복 소식을 전한지 불과 3일밖에 안 지난 시점. 패전국 일본의 첫 국책 사업이 바로 국가가 주도하는 매춘이었다.
아무리 패전국이라도 일본이 매춘 사업에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 인사로 꼽히는 존 듀어 MIT 명예교수(근대 일본사)의 저서 ‘패배를 껴안고(원제 Embracing Defeat)’들춰보자.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 패배를 자기 개혁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이 책에서 듀어 교수는 패전 직후 분위기와 일본 정부의 걱정을 전한다.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나가자마자 ‘적군은 일단 상륙하면 부녀자들을 남김없이 능욕할 것“이란 소문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내무성 정보과는 이 소문이 일본 자신의 군대가 점령지에서 벌인 행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일본에 진주할 미군이 자신들처럼 행동할 것 같아 겁냈던 ‘성의 방파제(性の防波堤)’ 구축에 나섰다. 미군 병사들이 일본인 규수와 부인들을 겁탈할 우려가 있으니 국가가 매춘업을 알선해 피해를 방지하자는 목표 아래 일본 정부는 조직부터 만들었다. 화류계업자들을 모아 설립한 단체의 이름이 ‘특수위안시설협회(RAA:Recreation Amusement Association)’. 업자들에게 대출도 내줬다. 협조 요청을 받은 대장성 주세국장 이케다 하야토(地田勇人)은 5,500만 엔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에 ‘순결을 지킬 수 있다면 1억 엔도 싸다’라며 은행 보증과 대출을 연결해줬다. 이케다! ‘한국전쟁이 터졌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제 일본은 살았다’고 반색했다는 일본 총리,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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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부가 앞장서 제 나라 여성의 몸까지 팔게 하는 나라. 양가 규수들을 보호한답시고 상대적으로 힘없고 약한 계층의 여성들은 주둔군의 성 처리 도구로 써먹은 나라, 일본. 을(乙)의 처지에서 그런 짓을 한 나라가 갑(甲)의 입장이었을 때는 식민지나 점령지 여성들을 어떻게 여겼을까. 짐작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상실했던 국가 일본’은 어렵고 불행했던 시절의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식민지 침탈 과정에서 획득한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하긴 우리 역시 매매춘에서 자유롭지 않다. 개발 시기에 한국 정부는 미군 기지 주변의 집창촌과 요정에서 미군과 일본인 상대 매춘을 은근히 부추겼다. 돈 앞에 가치가 무너진 물신(物神) 숭배에 젖은 한국인들은 먹고살 만하니까 해외에 나가 당했던 짓을 다른 민족에 되갚는다. 그래도 너흰 아니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일본은 ‘한국군도 위안부를 운용했다’며 역공을 펼친다. 한국이 매매춘에서 깨끗하지 않은 게 일부 사실이라도 일본만큼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현대 국가에서 공권력이 국책 1호 사업으로 매춘업을 한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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