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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콩글리시] '운전자론' 무색케 한 '코리아 패싱'

바람아님 2017. 8. 24. 10:21
디지털타임스 2017.08.23. 17:25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자동차의 운전대를 우리는 보통 핸들(handle)이라고 한다. '핸들 포 유(handle for you)'는 대리운전 회사의 상호인데 재치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자동차의 운전대는 핸들이 아니다. 핸들은 창문이나 서랍, 문 따위에 붙어 있는 작은 손잡이다. She turned the handle and opened the door(그녀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콩글리시 '핸들'을 그들은 뭐라고 할까? 스티어링 휠(steering wheel), 때론 그냥 wheel이라고 말한다. 자동차, 버스, 자전거 등에 둥근 모양으로 된 운전 도구가 휠(wheel)이다. "이제 네가 운전할래?(Do you want to take the wheel now?)처럼 '운전대를 잡는다'고 말하는 것은 '운전대 앞에 앉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You've been behind the wheel too long(넌 너무 오래 운전했어)에서 보듯 behind the wheel은 운전대 앞에(우리는 앞이라고 말하나 영어는 뒤라고 함) 앉아 있다는 뜻이니까 drive와 동의어가 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왜 핸들 얘기를 하는지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 안보위기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하면서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되풀이했다. 9년 만에 집권한 진보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간다는 기조 아래 화해와 협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매일, 2017. 8.14).


문대통령은 지난 7월 6일 베를린에서 발표한 '신(新)베를린 구상'에 따라 북핵 위기 속에서도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미국이 '화염과 분노'를 나타내고 북한이 괌을 미사일로 포위하는 작전을 발표하는 등 치킨 게임(game of chicken)이 벌어졌다. 이런 엄중한 시간에도 대통령은 한반도 안보위기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지만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전쟁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우발적인 군사충돌의 가능성을 주도적으로 차단하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에 힘쓰겠다고 외친다.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서 나온 듯 싶다. 그러나 사드배치를 반대해 왔고(뒤늦게 '임시'배치하겠다고 밝힘) 전시작전권 회수를 분명히 해온 좌파 정권으로서 언제 어디서든 만나 대화하자고 북쪽에 되풀이 제안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과 미사일 위협뿐이다. 코리아 패싱은 중국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한국이 북한문제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콩글리시다. 지금까지 보여준 북한의 노림수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핵문제는 북미(北美) 문제라고 하는 북한의 태도가 코리아 패싱을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가 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사이 이해 당사자의 사정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강대국의 외교논리 또한 코리아 패싱의 우려를 낳는다. 즉각 진화에 나서긴 했으나 미군철수론까지 대두되는 요즘 아닌가.


코리아 패싱은 일본식 영어에서 빌어온 표현이다. 1990년대 경제위기와 국제적 위상의 추락으로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저팬패싱(Japan passing)이라고 했는데 코리아 패싱은 이를 본떠 만든 말이다. 이 때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갈라파고스화(化) 하듯 고립되고 열강반열에서 밀려나는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패싱은 소외, 왕따, 무시, 배제, 따돌림의 의미다. 영어로는 Korea has been passed over(한국은 배제됐다)라고 쓸 수 있다.


재미저술가 조화유는 코리아 패싱의 영어표현으로 'cold-shoulder Korea'가 적절하다고 했다. cold-shoulder는 '홀대하다', '냉대하다(to treat someone in an unfriendly way)'라는 의미다. It is impolite and unkind to cold-shoulder people(사람들을 냉대하는 것은 예의 없고 불친절한 짓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brush-off가 있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대한 무례하고 쌀쌀맞은 행동을 가리킨다. 뉘앙스는 좀 차이가 있으나 또다른 표현으로 하이 해트(high-hat)가 있다. 이 말은 남을 멸시하든가(treating others as inferior) 하대하다(look down on)의 뜻이다. 우리말 왕따에 꼭 맞는 영어는 없으니까 에둘러 풀어써야 할 것이다.


남북문제는 군사적 대등한 힘을 갖고 있을 때 대화의 장이 열린다. 북이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코리아 패싱을 막아낼 힘과 외교적 역량이 없으면 우리는 운적석은 커녕 조수석에도 앉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