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1.10 김성현 기자)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조준래 옮김|어크로스
456쪽|1만8000원
'70년간의 공산주의가 러시아를 망쳐놓았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반공 교과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 런던대학 버벡 칼리지
역사학 교수의 이 책이 독특한 점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통치 전통은 20년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오늘날 러시아에서 부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스탈린 시절에 대한 미화(美化)나 향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올해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서 국내에도 관련 서적이 쏟아진다.
이 책은 1891년의 대기근부터 1991년 소련 해체에 이르기까지
'100년에 이르는 역사를 단일한 혁명의 사이클로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소련의 기적: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 계획은 구현되어 있다'처럼 능구렁이 같은 입심이 빛나는 구절이 적지 않다.
[만물상] 러시아혁명 100주년 (조선일보 2017.11.06 김태익 논설위원) |
꼭 100년 전 오늘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음산한 날씨였다. 이따금 뼈를 시리게 하는 차가운 가랑비가 내렸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 귀족 딸들이 신부 수업을 위해 다니던 스몰니학교는 북적대고 있었다. 낡은 군복을 걸치고 진흙투성이 장화를 신은 퇴역 군인, 노동자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웅성거렸다. 몇 달 전 황제를 내쫓고 구성된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모인 소비에트(대표자회의) 멤버들이었다. 그 안에 망명지 핀란드에서 돌아온 혁명가 레닌이 있었다. ▶이튿날 무장한 볼셰비키들이 중앙은행·전화국·우체국·중앙역·발전소·재무성을 차례로 접수했다. 네바강에 정박해 있던 순양함 오로라호가 황궁인 겨울궁전 쪽으로 포탄을 쏜 걸 신호로 볼셰비키들이 일제히 황궁으로 쳐들어갔다. 임시정부 수반 케렌스키는 이미 도망간 후였고 대부분의 각료는 바로 투항했다. 레닌은 최초의 공식 연설에서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국가 권력은 우리 소비에트에 이양됐다. 노동자·군인·농민의 혁명 만세!" [만물상] 러시아혁명 100주년
러시아 구력(舊曆·율리우스력) 10월 25일이 오늘날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으로 11월 7일에 해당한다. 이런 걸 '시작은 창대했는데 나중이 미약했다'고 해야 할까. 러시아혁명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실험'으로 일컬어지고 그 결과 태어난 소련은 한때 세계 절반을 호령한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70여년 만에 처참한 실패로 귀결됐다. 러시아혁명 100주년 기념행사는 러시아에서조차 외면받을 정도로 썰렁하다고 한다. ▶크렘린 대변인은 "왜 그런 걸 경축해야 하나"라고 했다. 러시아 공산당은 하원(두마) 450석 중 42석을 점할 뿐이어서 대대적 기념식을 얘기할 형편이 못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200여 미술관 가운데 혁명 100주년을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곳은 사립 미술관 하나뿐이다. ▶혁명은 피를 요구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들 한다. 자기들 피는 흘리지 않고 혁명의 수혜만 누리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일수록 다음 날 보수적으로 돌변한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은 러시아혁명을 평가하는 잣대로도 훌륭하다. 러시아혁명은 효율적 실현을 위해 잘 짜인 조직과 엄격한 위계질서를 필요로 했다. 이는 새로운 특권과 불평등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레닌의 동상들이 고철로 돼 사라지고 이제는 러시아혁명의 기억조차 희미해진 걸 보면 '혁명'은 역시 쉽게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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