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권오길의생물의신비] 까마귀와 효심

바람아님 2017. 12. 23. 09:36
세계일보 2017.12.21. 22:25

‘겨울 진객’ 까마귀가 생태환경 관광상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다.

그런데 ‘까악~ 까악~ 까악’ 하는 까마귀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운수불길한 생각이 든다. 구전신화 ‘차사본풀이’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저승사자 강림이 까마귀를 시켜 인간세계에 전달하도록 했다 한다. 한데 인간 세계에 도착한 까마귀가 적패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에 까마귀는 종이에 적힌 것을 알 수 없어 마음대로 떠들었다. 그 결과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죽는 순서가 뒤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까마귀 울음소리는 죽음을 부르는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한다.


이처럼 우리는 까마귀를 흉조(凶鳥)로 치는데, 서양이나 일본에선 오히려 길조(吉鳥)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도 한때는 고대신화에서 보듯이 세 발 달린 까마귀를 신성한 동물로 취급해 힘의 상징으로 여겼다.

전 세계 40여 종의 까마귀 중 우리나라에는 까마귀·갈까마귀·떼까마귀·큰부리까마귀가 있다. 까마귀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으로 보통 무리 생활을 하는데, 몸길이는 50cm로 수컷이 암컷보다 좀 크며, 보랏빛 윤기나는 새까만 깃털이 나는데 다리·발·부리도 새까맣다.


까마귀는 속담이나 설화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까마귀가 검기로 속도 검겠나’란 사람을 평가할 때 겉모양만 볼 것이 아니라는 말로 쓰인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란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말한다.

까마귀·산까치·물까치 따위의 까마귓과 조류는 하나같이 지능이 높아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침팬지처럼 도구를 쓴다. 또 까마귀는 들쥐·딱정벌레 따위나 곡식, 열매를 먹는 잡식성이다.


까마귀는 어미가 새끼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다가 어미가 늙어 날지 못하게 되면 장성한 새끼가 먹을 것을 물어다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이른바 ‘반포지효’(反哺之孝)다. 이렇듯 미물인 까마귀도 효를 본능적으로 실천하는데 주위를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효를 모르는 것 같아 슬프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