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8.01.04 03:13
위대한 역사는 사기극에서 시작됐다. 최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조선통신사 이야기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국왕이 일본 막부(幕府) 최고 권력자 쇼군(將軍)에게 보낸 외교사절. 특히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1811년 12차례에 걸쳐 건너간 통신사는 양국 간 평화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500명 규모 통신사 일행은 일본 각지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각 번(藩)이 통신사 1회 접대에 쓴 총비용이 요즘 돈으로 약 2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히로시마현은 통신사에게 매끼 진상한 '국 3가지, 요리 15가지' 반상까지 전시할 정도다. 당시엔 "조선통신사가 2년 연속 오면 나라가 망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그런데 임란 후 첫 통신사가 일본에 건너간 것이 1607년. 수백만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노예로 끌려간 전쟁이 끝난 지 불과 9년 만의 일이다.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등재 일본 측 학술위원장 나카오 히로시 박사는 "쓰시마(대마도)의 사기극이 발단"이라고 설명한다. 그 '사기극'이란 쓰시마 번주가 두 나라 국서(國書)를 번갈아 위조한 사건을 말한다. 조선과 교역이 끊기며 고사(枯死) 직전에 이른 쓰시마 번주는 쇼군 이름으로 '침략 전쟁을 사죄한다'는 글을 적고, 쇼군의 옥새·서체·연호를 위조한 국서를 만들어 조선에 보냈다. 잡범들을 "범릉적(犯陵賊·왕릉을 훼손한 범인)"이라며 넘겨주는 쇼도 벌였다.
이에 조선은 '지난 만행으로 일본과는 한 하늘 아래 살지 못할 정도지만, 먼저 위문편지를 보내어 잘못을 고쳤다고 하니 후의에 답한다'는 취지로 답장을 보냈다. 쓰시마 번주는 이 역시 중간에 가로채 갈등 소지 부분을 통째 덜어내고 '조선이 화교를 먼저 요청한다'는 문장을 집어넣었다. 국교 재개는 이렇게 시작됐다.
두 나라 정부가 과연 바보같이 속은 걸까. 당시 기록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조선 정부는 애초에 국서가 가짜임을 간파했다. 일본 역시 이 문제로 쓰시마 번주가 재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국서의 '흠'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실리(實利)는 양 국민이 챙겼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수천 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양국 간 분쟁으로 벌어진 강제 징발과 약탈이 사라졌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은 반발하고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하는 것만이 외교일까.
통신사가 끊긴 지 64년 만에 일본에서 온 것은 군함 운요호였다. 조선은 망했고, 고통은 위정자 아닌 국민 몫이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 유럽 속담이다.
두 나라 정부가 과연 바보같이 속은 걸까. 당시 기록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조선 정부는 애초에 국서가 가짜임을 간파했다. 일본 역시 이 문제로 쓰시마 번주가 재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국서의 '흠'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실리(實利)는 양 국민이 챙겼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수천 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양국 간 분쟁으로 벌어진 강제 징발과 약탈이 사라졌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은 반발하고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하는 것만이 외교일까.
통신사가 끊긴 지 64년 만에 일본에서 온 것은 군함 운요호였다. 조선은 망했고, 고통은 위정자 아닌 국민 몫이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 유럽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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