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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암호화폐는 파인애플인가 오리너구리인가

바람아님 2018. 1. 28. 09:26
중앙일보 2018.01.27. 01:18

발전하는 기술, 뒤처진 법·제도가
암호화폐 논란과 사회 혼란 원인
다양한 신개념 화폐를 수용하고
화폐 개념의 재정의와 법률 필요
김형태 미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장
파인애플에 애플 자(字)가 들어 있으니 애플(사과)일까. 아니다. 종(種)은 물론이고 목(目)도 다르다. 사과는 장미목, 장미과에 속하고 파인애플은 벼목, 파인애플과에 속한다. 파인애플은 17세기까지 영국에서 솔방울을 의미했다. 브라질 원산인 지금의 파인애플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너무 인기가 좋아 원래 솔방울을 밀어내고 파인애플이란 단어를 꿰차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리너구리는 너구리인가. 맞다. 너구리다. 바위너구리, 나무타기너구리, 미국너구리처럼 너구리의 일종이다. 너구리로서의 본질적 특성을 모두 갖고 있고 여기에 주둥이만 오리 모양을 닮았으니 당연히 너구리다.


진짜 하고 싶은 질문은 이거다.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화폐’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오리너구리가 너구리인지를 판단하려면 너구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화폐란 상위 개념도 없이 자꾸 암호화폐에 매달리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서로 다른 과녁에 활을 쏘고 서로 자기가 명중시켰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화폐는 교환 수단, 가치 저장 수단 그리고 가치 척도 기준이라고 화폐금융론 책에 나와 있다. 얼핏 직관적이고 합리적 정의 같아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은 화폐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화폐의 기능이다. 자식을 낳고 사회의 단위를 이루고, 부부간에 정신적·육체적 안정감을 주는 것은 결혼의 기능이지 결혼의 정의는 아니다. 결혼은 그냥 남녀 간의 지속적인 결합 그 자체다. 동성 결혼이 허용된 프랑스라면 남녀라는 조건도 필요 없겠다. 화폐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그 무엇’이다. 신뢰의 원천은 금이든, 중앙은행이든, 블록체인이든 다양하다. 신뢰가 있기 때문에 교환의 수단이 되고 가치가 저장된다. 가치가 들쑥날쑥하면 투자의 대상은 될지언정 화폐는 아니다.

중앙시평 1/27
암호화폐 논란이 지속되는 근본적 이유는 ‘화폐’의 법적 개념이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란 기준이 명확지 않으니 암호화폐가 화폐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나라 법에만 없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 법에도 없다. 왜 그럴까? 화폐, 특히 법정화폐는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은 굳이 법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동의하기 때문이다. 식품관련법에 ‘사람 고기는 팔면 안 된다’는 말을 굳이 포함할 필요가 있을까. 문제는 과거에 당연했던 근본적 가정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상상치 못한 속도와 방향으로 발전되는 기술, 하지만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법과 제도 때문이다. 이 격차가 너무 커지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심하면 패닉이 온다. 벌어진 격차가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 위험이 될 수도 있다.


현재와 미래를 단절시키는 절벽 틈으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신속히 갭을 메워야 한다. 암호화폐도 정책과 제도를 통해 틈이 메워져야 허둥대는 사람들이 없어진다. 연착륙을 위해 바람직한 절차를 생각해 본다. 첫째 단계는 암호화폐와 기존 제도와의 갭이 너무 커서 과거 개념으로 다루기 힘든 단계다. 유사수신 등 기존의 개념으로 규율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임시방편 단계가 오래가면 위험하다. 둘째 단계는, 암호화폐는 전통적 화폐와 다르다는 ‘파인애플 프레임’이다. 별도의 ‘암호화폐에 관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혼란스러운 신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서 투기가 투자가 되고, 혼란이 시장의 역동적 힘으로 승화된다. 하지만 파인애플 프레임에선 아직 화폐가 암호화폐를 포용하지 못한다.


마지막은 화폐 개념을 재정의해 다양한 화폐를 화폐 개념 속에 수용하는 단계다. 오리너구리도 너구리로 포함하는 ‘오리너구리 프레임’ 단계다. 미래에는 지금과 달리 교환 기능과 가치 저장 기능이 분리돼 교환 기능에만 충실한 화폐가 생겨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현재의 법정화폐나 암호화폐는 모두 교환 기능과 가치 저장 기능의 동시 보유를 전제로 한다. 가치 저장 기능이 없는 화폐엔 투기는 물론 투자란 개념도 아예 없다. 교육화폐, 노인돌봄화폐, 예술화폐, 음식화폐처럼 특정 생태계 내에서 거래 활성화 수단으로서만 쓰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이런 화폐에 크게 공헌할 것이다.


이렇듯 화폐가 다양해지면 화폐의 ‘화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화폐로 인정받기 위한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조건 모두를 만족하면 화폐성이 강한 화폐, 일부만 만족하면 화폐성이 약한 화폐가 된다. 미래엔 ‘화폐 창조와 화폐성에 관한 법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오리너구리는 오리가 아니라 너구리다.


■ ◆약력

「 전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장 」

김형태 미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