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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교조주의' 정부 정책이 일자리 창출 막는다

바람아님 2018. 2. 5. 10:07

(조선일보 2018.02.05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최저임금 상승에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제로'까지 겹치면서 일자리 창출은 뒷전으로 밀려나
분배 개선과 고용 창출 兩立은 성공하기 힘든 至難한 과제
선거용 정책 일방 추진하면 위험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사상 최고 청년 실업률에 청와대가 각 부처 공무원들을 질타했다고 한다.

난데없이 왜 일선 공무원을 탓하나 싶다.

주요 정책을 보면 일자리 문제가 정부 내에서 중요시되지 않는다는 게 확연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3% 후반을 맴도는 평균임금 상승률에 비해 7%씩 오르는 최저임금 상승률이

과도하다는 우려가 높았는데, 올해는 무려 16.4%가 올랐다.

근로시간도 크게 줄인다니 경기(景氣)가 좀 나아진다고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늘릴 계제가 아니다.

정부는 여기에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압력을 음으로 양으로 넣고 있으니, 대기업마저도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을 짊어지느니 고용을 억제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법하다.


이러니 일자리가 잘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미국·유럽·신흥국까지 세계경제가 순풍이고 고용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데도, 유독 우리나라 고용주들이 일자리 늘리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바로 정부 정책 때문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런 정책이 약자(弱者) 보호를 위해서도 부적절하다"는 합리적 지적에 정부가 아예 귀를 막고

"같이 사는 사회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다.

즉 정책 비판을 정책의 정의(正義)로운 취지에 반(反)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이다.

지금의 논점은 형평을 좀 더 중시하는 방향을 추구할 것이냐 마느냐가 아니다.

많은 이가 현재 우리나라 발전 단계에서 격차 완화와 취약층 배려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 동의하고

이를 지지한다. 정작 핵심은 이런 합의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정부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정책들은 민노총과 한노총 등 조직 근로자들 중심으로 회자되던 내용이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선정적 구호로

교조화한 것에 불과하다. 분배 개선이나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 어떤 측면에서도 합리성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대신 정부 재정으로 가구 소득 보조를

병행하는 안(案)을 제안했다가 양(兩) 노총의 격렬한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그런데 이는 노동시장 구조가 우리와 비슷한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이다.


취약 근로자를 돕는 게 목적이라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만 집착할 이유가 없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다가 저숙련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현재와 같은 장시간 근로를 줄이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를 급격하고 경직적으로 추구하면 중소기업과 그에 속한 저숙련 근로자에게 충격이 주로 가니,

주(週) 단위로 통제하는 대신 장기간에 걸친 총근로시간 한도를 준수하게 하는 등 완만하면서도 탄력성을 가미한 방식을

꾸준히 추진하자는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시행착오 끝에 근로자 보호와 기업 경쟁력의 양립(兩立)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특히 '비정규직 제로(zero)'는 경제 환경 변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약자의 처지만 악화시키는 정책이다.

이 때문에 지난 연말 공공 부문과 대학의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일자리를 이미 잃었다.

근로자 이해를 적극 대변해온 국제노동기구(ILO)마저도 기술 변화와 국제화 속에서 근로 형태가 다양화하는 흐름을

인정하고 비정규직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보인 지 오래인데도 말이다.

정부가 정작 씨름해야 할 문제는 비정규직을 '다른 일자리'가 아닌 '열등한 일자리'로 만들어버리는 '차별'이다.

'일은 정규직처럼 시키면서 대우만 시간제'라고 공론화한 시간제 교사들의 고충이 전형적이다.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의

일자리를 앗는 게 아니라 불합리한 차별이 생기는 지점을 밝히고 해소하는 게 진정한 노동 존중 정책이다.


정부가 이런 지적에 귀를 닫고 선거 공약에서 급조(急造)한 정책을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국가로서 큰 위험이다.

정책이 딱딱한 화석처럼 교조주의가 되는 순간, 최선을 찾으려는 노력은 폐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분배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양립시키기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이루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과제다.

어떤 국가도 이를 수월히 여기지도, 충분히 성공하지도 못했다.

타인도 나만큼은 정의롭다고 인정하고, 더 나은 정책 수단이 있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금 시장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낼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