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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韓 세탁기, 美 시장 뚫는 힘

바람아님 2018. 1. 28. 19:59

(조선일보 2018.01.27 김덕한 뉴욕특파원)


김덕한 뉴욕특파원김덕한 뉴욕특파원


미국 행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결정한 것은 '깡패 짓'에 가까워

보인다. '월풀'사(社)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매달려 자기를 괴롭히는 한국 애들을 혼내 달라고 떼를

쓰자 역성을 들어 주먹을 휘둘러버린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제프 페티그 월풀 CEO는 미국 재계의 대표적인 친(親) 트럼프 인사다.


지난 25일 미국 최대 가전 전문점 베스트바이의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점에 가봤다.

최고 50% 관세를 두들겨 맞게 된 한국 세탁기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월풀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위쪽에 문이 달린 일반형 세탁기로, 판매가는 400달러였다.

LG, 삼성 제품은 그보다 200달러 이상 비싼 드럼 세탁기가 주력 품목이었다.

동급 제품도 대부분 LG, 삼성이 월풀보다 100달러 이상 비싸게 팔렸다.


매장 매니저는 "LG, 삼성 제품에 신기술이 훨씬 많이 적용돼 있어 품질 차이만큼 가격 차가 난다"며

"관세 때문에 가격이 올라도 LG, 삼성 세탁기는 팔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 세탁기 시장점유율에서 LG와 삼성은 각 11%대로 42%가 넘는 월풀(자회사 메이텍 포함)과 격차가 아직 크다.

그런데도 월풀은 LG, 삼성의 성장세를 싹부터 자르려 하고 있다.

한국 세탁기의 대미(對美) 수입이 급증한 것도 아닌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한국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한 것은 대문을 없애기로 해놓고 높은 통행료를 내라는 식의 행위다.


상황을 판가름 짓는 열쇠는 미국 소비자들이 쥐고 있다.

베스트바이 고객들이 매긴 세탁기 만족도 별점을 보면, LG와 삼성 제품은 대부분 4.5 이상이었으나

월풀은 4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LG전자는 미국소비자고객만족도(ACSI) 가전 부문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런 호평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미국 드럼 세탁기 시장을 처음 개척한 두 회사는 스팀, 제트 수류, 문 3개, 세탁조 2개처럼 고객이 원하는 혁신 기능을 넣은

신제품을 잇달아 내놨다. 그래서 미국인들조차 "세이프가드 때문에 오르게 될 가격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가 지게 될 것"

"가격 경쟁력은 막아도 혁신 경쟁력은 못 막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대결에서 우리가 이긴다면, '월풀'처럼 방어막 뒤에 숨으려는 기업과 미국 산업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어찌 한·미 간에만 적용되는 문제일까. 혁신에 바탕을 둔 경쟁력 있는 제품은 세계 각국의 숱한 보호무역 장벽을

뚫는 '불사조(不死鳥) 무기'다.

경제성장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기업을 더 아끼고 혁신을 적극 장려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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