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입력 2018.01.28 01:53
전체 구성은 평양 청암리 금동관 화초 문양은 무령왕릉과 비슷
‘천상의 것’ 같은 완전한 예술작품 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해 놀라
미술사에선 대표작으로 안 다뤄져 유물 보고 그리며 조형적 실체 느껴
전체 구성은 평양 청암리 금동관 화초 문양은 무령왕릉과 비슷
‘천상의 것’ 같은 완전한 예술작품 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해 놀라
미술사에선 대표작으로 안 다뤄져 유물 보고 그리며 조형적 실체 느껴
[드로잉 한국고대미술] 신비로운 백제 예술품
몇 년 전부터 우리 고대미술의 예술적 감수성에 끌려 관련 유물들을 그리기 시작한 화가 김혜련. 그가 드로잉하며 발견하고 감탄하고 확신하게 된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한국고대미술이라는 신비로운 퇴적층에 역사적 생명력이 다시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나는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책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다 잠들고 독일 표현주의 화집을 보며 가슴이 뛰곤 했다. 언어 이상의 이미지의 위력은 나를 압도했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지각, 행위를 통한 감성표현, 이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결국 화가가 됐다.
베를린 유학 시절,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미술관을 열심히 찾았다. 스페인 톨레도의 엘 그레코 생가, 그리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까지 간 것을 보면 내 안에 미술작품에 대한 엄청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과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의 체험은 압도적이었다. 몸이 굳어 버리는 듯한 강렬한 감응상태를 하나의 미술작품이 보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니, 그것도 시차를 두고 동양에서 자란 나에게.
나는 화가이지만 또한 감상자다. 좋은 작업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좋은 작품 앞에서 한없이 기쁘고 겸손해진다. 하면 할수록 어렵고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것이 미술의 세계다.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손으로 만들고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지각하는 존재 그 자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철저한 논리력은 없지만 그가 예술작품의 근원에 선뜻 진리를 적용한 구절을 읽을 때 나는 몹시 반가웠다. “선한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 이런 생각을 나는 자주 하기 때문이다.
귀국 후 나는 가족과 함께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지 답사를 많이 했다. 독일에서의 십년을 보상하려는 듯, 경주 남산, 해인사, 부석사 등 사찰과 고궁은 물론, 고창 고인돌 유적지, 나주 반남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등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곳과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유럽 박물관에서뿐 아니라 우리 문화유적지에서도 그 아름다움 앞에서 심장이 뛰었다.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하고.
그러던 중 몇 년 전 아주 특이한 일을 겪었다. 2014년 겨울 가족여행을 겸해 부여에 갔을 때였다. 오후 늦게 도착해 서둘러 보게 된 정림사지 석탑은 실제 모습이 상당히 커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형세와 형태가 마치 거대한 위인을 보는 듯 예사롭지 않았고, 캠핑 장소로 정한 백마강변으로 가는 도중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됐다.
내가 알던, 신라에 패배한 백제의 역사가 아니었다. 배후에 커다란 예술적 역량이 있어야만 가능한, 매우 뛰어난 예술품이었다. 그것도 빈약하게 몇 점을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가름하기 어려운, 커다란 정신세계의 흔적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을 들고 백마강변에 앉아 안개 속에 멀리 늘어선 맞은편 나무들의 윤곽선을 감상했다. 하나의 동양화 같은, 잊을 수 없는 아침 풍경이었다.
그리고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러 부여박물관에 갔는데 진품이 서울 전시장으로 이동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미술관 입구에서 상영 중인 백제미술에 대한 영상물을 보게 됐다.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다. 전날 밤 백마강에서 꾼 꿈이 생각난 것이다. 고귀한 신분인 듯 단상에 앉아 있던 옥동자가 웃으며 나에게 와서 안겼는데, 하얀 옷이 눈부시게 밝았고 양미간이 특이하게 생겼다. 그런데 그가 박물관 영상물에 백제 성왕(聖王)의 얼굴이라고 소개되지 않는가. 나중에 찾아보니 성왕 얼굴이 조각된 작품이 일본 호류지(法隆寺) 몽전(夢殿)에 비밀스럽게 안치되어 있다고 하여 그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을 보러 일본 나라(奈良)에 갔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베일에 싸여 있는 듯 우리 고대사가 분명치 않았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나는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책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다 잠들고 독일 표현주의 화집을 보며 가슴이 뛰곤 했다. 언어 이상의 이미지의 위력은 나를 압도했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지각, 행위를 통한 감성표현, 이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결국 화가가 됐다.
베를린 유학 시절,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미술관을 열심히 찾았다. 스페인 톨레도의 엘 그레코 생가, 그리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까지 간 것을 보면 내 안에 미술작품에 대한 엄청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과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의 체험은 압도적이었다. 몸이 굳어 버리는 듯한 강렬한 감응상태를 하나의 미술작품이 보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니, 그것도 시차를 두고 동양에서 자란 나에게.
나는 화가이지만 또한 감상자다. 좋은 작업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좋은 작품 앞에서 한없이 기쁘고 겸손해진다. 하면 할수록 어렵고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것이 미술의 세계다.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손으로 만들고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지각하는 존재 그 자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철저한 논리력은 없지만 그가 예술작품의 근원에 선뜻 진리를 적용한 구절을 읽을 때 나는 몹시 반가웠다. “선한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 이런 생각을 나는 자주 하기 때문이다.
귀국 후 나는 가족과 함께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지 답사를 많이 했다. 독일에서의 십년을 보상하려는 듯, 경주 남산, 해인사, 부석사 등 사찰과 고궁은 물론, 고창 고인돌 유적지, 나주 반남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등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 곳과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유럽 박물관에서뿐 아니라 우리 문화유적지에서도 그 아름다움 앞에서 심장이 뛰었다.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하고.
그러던 중 몇 년 전 아주 특이한 일을 겪었다. 2014년 겨울 가족여행을 겸해 부여에 갔을 때였다. 오후 늦게 도착해 서둘러 보게 된 정림사지 석탑은 실제 모습이 상당히 커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형세와 형태가 마치 거대한 위인을 보는 듯 예사롭지 않았고, 캠핑 장소로 정한 백마강변으로 가는 도중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됐다.
내가 알던, 신라에 패배한 백제의 역사가 아니었다. 배후에 커다란 예술적 역량이 있어야만 가능한, 매우 뛰어난 예술품이었다. 그것도 빈약하게 몇 점을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가름하기 어려운, 커다란 정신세계의 흔적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을 들고 백마강변에 앉아 안개 속에 멀리 늘어선 맞은편 나무들의 윤곽선을 감상했다. 하나의 동양화 같은, 잊을 수 없는 아침 풍경이었다.
그리고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러 부여박물관에 갔는데 진품이 서울 전시장으로 이동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미술관 입구에서 상영 중인 백제미술에 대한 영상물을 보게 됐다.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다. 전날 밤 백마강에서 꾼 꿈이 생각난 것이다. 고귀한 신분인 듯 단상에 앉아 있던 옥동자가 웃으며 나에게 와서 안겼는데, 하얀 옷이 눈부시게 밝았고 양미간이 특이하게 생겼다. 그런데 그가 박물관 영상물에 백제 성왕(聖王)의 얼굴이라고 소개되지 않는가. 나중에 찾아보니 성왕 얼굴이 조각된 작품이 일본 호류지(法隆寺) 몽전(夢殿)에 비밀스럽게 안치되어 있다고 하여 그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을 보러 일본 나라(奈良)에 갔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베일에 싸여 있는 듯 우리 고대사가 분명치 않았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정림사지 석탑, 거대한 위인 보는 듯
정림사지 석탑에서 느꼈던 그 위용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탑의 구조와 형태가 안정적이면서도 기상이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을 주고, 또한 돌아서면 우아한 여운을 남긴다. 채석장 운영이나 도르래 사용 등 기술적인 문제는 사실 잘 모른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어떻게 저런 단순하고도 깊이 있는 형상을 구상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람 키 정도가 아니라 8.8m라는 높이를 올려다보는 관찰자적 시각이 미리 계산된, 최소 단위를 이루는 돌덩이의 형태, 그 선과 선, 면과 면이 만나 이루어 내는 이차적, 삼차적 형태도 염두에 둔, 지극히 세련된 조형물이다.
백제 미술이 궁금해진 나는 익산의 미륵사지 유적과 왕궁리 유적도 방문했다. 백제조형물이 풍기는 우아미의 배후에는 재료를 다루는 축적된 경험, 형태에 대한 자신감, 직선과 곡선 사이에 균형을 잡는 절제된 정신성, 이런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불살라졌을 그 많은 예술품을 가름해 본다. 안다는 것은 때로 많은 고통을 불러낸다. 거의 사라지고 겨우 남은 백제 유적이라도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 다행일까? 하지만 백제미술의 진수를 느끼려면 일본 나라에 가야 한다. 특히 호류지에.
백마강에서 성왕 얼굴을 보는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내가 기어이 호류지를 두 번이나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독도문제와 임나일본부설, 하여간 나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해불가였는데, 호류지를 다녀온 이후 찾아보기 시작한 양국의 고대사에서 혼란과 이해, 비참함과 숙연함이 교차했다. 과거사에 대한 감정은 그렇다 치자. 호류지에 있는 구다라관음(百濟觀音)이 백제관음이고, 구세관음이 백제 성왕의 얼굴인데 이들 작품이 우리 미술사에서 백제미술의 대표작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의아했다.
백제관음상과 구세관음상 머리의 보관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의 궁금증은 더해 갔다. 이 특이한 형태와 문양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여러 유물을 추적하다가 이들 보관의 전체 구성이 평양 청암리 출토 불꽃뚫음무늬 금동관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백제관음 보관 양쪽의 화초문양은 그 형태와 동세(動勢)가 무령왕릉 관식(冠飾) 문양과 일정 부분 동일하다. 구세관음의 보관 문양도 평양 진파리 출토 연화문 금동장식 문양과 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투조금구 문양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보관에 달린 파란 구슬과 달개장식은 우리 고대 유물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조형 특성이 아닌가? 반갑고 놀라웠다. 상기해 보니 백마강 부여의 백제도 졸본부여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이며, 졸본부여 고구려도 해모수 왕의 북부여에서부터 생겨난 나라이니 백제미술과 고구려 미술이 유사한 문양을 남기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라와 고려를 거쳐 압록강 이북 영토를 잃으면서 조선이 북부여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통탄했다.
지금의 국경이라는 개념은 고대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백제와 일본은 형제 나라였고 가야와 일본과의 관계도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복잡한 고대 정치 구도 속에서 북부여에서 유래한 고구려가 그 막강한 군사력 외에 신라 유물에도 조형적 영향력을 남기고 있다.
일본에 있는 백제관음과 구세관음의 보관의 형태와 문양에도 역시 숨어 있다. 고대의 문양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식성과 다르다. 그들의 우주관, 세계관, 자연관,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절실하게 표현된다. 생각과 감정을 추상화한 결과다. 나는 저 만주 벌판이나 바이칼 호수의 황량한 나무에서 불어오는 듯한 감수성에 이끌린다. 내 안의 어떤 기억은 광대한 초원과 말의 질주, 그것을 기호화하려는 신비로운 문양들 사이를 서성거린다. 우리 예술의 조상은 정말 누구였을까?
백제 미술이 궁금해진 나는 익산의 미륵사지 유적과 왕궁리 유적도 방문했다. 백제조형물이 풍기는 우아미의 배후에는 재료를 다루는 축적된 경험, 형태에 대한 자신감, 직선과 곡선 사이에 균형을 잡는 절제된 정신성, 이런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불살라졌을 그 많은 예술품을 가름해 본다. 안다는 것은 때로 많은 고통을 불러낸다. 거의 사라지고 겨우 남은 백제 유적이라도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 다행일까? 하지만 백제미술의 진수를 느끼려면 일본 나라에 가야 한다. 특히 호류지에.
백마강에서 성왕 얼굴을 보는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내가 기어이 호류지를 두 번이나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독도문제와 임나일본부설, 하여간 나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해불가였는데, 호류지를 다녀온 이후 찾아보기 시작한 양국의 고대사에서 혼란과 이해, 비참함과 숙연함이 교차했다. 과거사에 대한 감정은 그렇다 치자. 호류지에 있는 구다라관음(百濟觀音)이 백제관음이고, 구세관음이 백제 성왕의 얼굴인데 이들 작품이 우리 미술사에서 백제미술의 대표작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의아했다.
백제관음상과 구세관음상 머리의 보관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의 궁금증은 더해 갔다. 이 특이한 형태와 문양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여러 유물을 추적하다가 이들 보관의 전체 구성이 평양 청암리 출토 불꽃뚫음무늬 금동관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백제관음 보관 양쪽의 화초문양은 그 형태와 동세(動勢)가 무령왕릉 관식(冠飾) 문양과 일정 부분 동일하다. 구세관음의 보관 문양도 평양 진파리 출토 연화문 금동장식 문양과 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투조금구 문양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보관에 달린 파란 구슬과 달개장식은 우리 고대 유물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조형 특성이 아닌가? 반갑고 놀라웠다. 상기해 보니 백마강 부여의 백제도 졸본부여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이며, 졸본부여 고구려도 해모수 왕의 북부여에서부터 생겨난 나라이니 백제미술과 고구려 미술이 유사한 문양을 남기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라와 고려를 거쳐 압록강 이북 영토를 잃으면서 조선이 북부여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통탄했다.
지금의 국경이라는 개념은 고대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백제와 일본은 형제 나라였고 가야와 일본과의 관계도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복잡한 고대 정치 구도 속에서 북부여에서 유래한 고구려가 그 막강한 군사력 외에 신라 유물에도 조형적 영향력을 남기고 있다.
일본에 있는 백제관음과 구세관음의 보관의 형태와 문양에도 역시 숨어 있다. 고대의 문양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식성과 다르다. 그들의 우주관, 세계관, 자연관,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절실하게 표현된다. 생각과 감정을 추상화한 결과다. 나는 저 만주 벌판이나 바이칼 호수의 황량한 나무에서 불어오는 듯한 감수성에 이끌린다. 내 안의 어떤 기억은 광대한 초원과 말의 질주, 그것을 기호화하려는 신비로운 문양들 사이를 서성거린다. 우리 예술의 조상은 정말 누구였을까?
드로잉 통해 한국 고대미술에 감탄
백제관음과 구세관음을 보는 순간 모든 감각이 멈춰 서는 듯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지난 예술작품의 순례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한 예술품, 내 표현대로 하자면 ‘천상의 것’과 같은 이상체였다. 신(神)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내 안에 놀라운 경외심이 일었다. 이 강렬한 경험은 또한 중요한 숙제를 안겨 주었다. 우리 고대미술에서 내가 느끼는 이 예술적 감수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문헌으로 연구할 능력도, 새로이 학문을 시작할 시간도 내겐 없다. 하지만 유물들을 직접 보고 그리면서 공책 크기의 드로잉들이 몇백 장으로 쌓여 갈 때 어떤 조형적 실체가 느껴졌다. 이 시각적 경험, 드로잉을 통해 탐색하고 감탄하고 확신하게 된 한국고대미술이라는 이 신비로운 퇴적층이 나 말고 그 누군가에게도 미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작은 마음의 위로가 되면 좋겠다.
김혜련 화가·예술학 박사
서울대 미술대학원 서양화과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 베를린 예술종합대학에서 회화실기로 학사 및 석사, 베를린 공대 예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현재 베를린과 파주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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