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삶의 향기] 베토벤의 올림픽 송가

바람아님 2018. 2. 4. 09:34


중앙일보 2018.02.03. 01:24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선택한 희망의 메시지
평창 올림픽 노래도 모든 게 마음에 달렸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평창 올림픽에 오는 북한의 선수단과 예술단을 두고 관심도 많고 말도 많다. 그래도 북한이 참가한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 전쟁이 나지는 않을까, 외국 선수단이 대거 불참해서 올림픽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태산 같았으니 말이다. 한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그동안 북한에게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갑작스런 평화 제스처가 어딘지 미덥지 않고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참고 포용하고 믿을 수밖에. 목전에 닥친 올림픽이 잘 치러지고 평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니까.


분단국가의 올림픽 단일팀 참가는 독일이 원조다.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있던 1956년, 독일은 이탈리아 동계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로 한다. 단일팀의 명칭은 “독일”, 국기는 검정·빨강·노랑의 삼색기, 국가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였다. 삼색기는 분단 이전부터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사용하던 것이니 단일팀이 올림픽 문장을 넣은 삼색기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단일팀의 국가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하나였다 둘로 갈린 나라가 국가로 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음악을 찾을 수 있을까.


베토벤은 독일인이 특별히 사랑하는 작곡가다. 할아버지가 벨기에 출신이니 엄격하게 말해 100% 독일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의 베토벤 사랑은 비할 데 없이 지극하다. “파리에 에펠탑, 로마에 콜로세움이 있다면 독일에는 베토벤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하기야 서양 음악사에서 그보다 뛰어난 예술적 진보를 이끌어 낸 작곡가가 과연 또 있을까. 그의 교향곡 몇 개만 들어보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음악가에게 가장 소중한 청각을 상실한 후 이루어낸 예술적 성과이니 그 얼마나 대단한가. 정현이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메이저 준결승 진출이라는 엄청난 성과 덕분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약시라는 한계를 이겨낸 투혼 때문이 아니었을까.


베토벤 작품 중에서도 왜 굳이 ‘환희의 송가’였을까. 그 자체가 전쟁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라서가 아닐까. 당시 프랑스 대혁명과 유럽을 휩쓴 전쟁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고, 절대왕정으로의 복귀는 자유와 평등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기에 베토벤은 젊은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떠올렸고, 그것을 인류의 형제애를 독려하는 합창으로 만들었다.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이여, 우리는 그대의 성소로 들어가리. 그대의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 합창이 교향곡에, 그것도 마지막 피날레 악장에 들어간 것도 파격이지만 이 곡이 주는 장엄하고 숭고한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음악이 항상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불리거나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 정권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나치즘을 칭송하는 송가로 애창되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일은 놀라움을 넘어 가히 충격적이다. 가스실로 이어지는 ‘천국으로 가는 길’로 끌려가면서 유대인들은 공포를 이기기 위해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독일 군인들은 살인을 위한 기계들을 정비하면서 같은 노래의 선율에 맞추어 휘파람을 불었다니. 유대인들이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벗어나서 자신들을 ‘영원한 성소로 안내할 환희의 빛’을 노래했다면,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라는 가사에 오랜 소망을 투영했다. 그들에게 인류가 하나 되는 그 세상은 아리아족에 의한 아리아족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환희의 송가’도 좋고 아리랑이면 또 어떤가. 평화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른다면. 적어도 올림픽 때만이라도 말이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