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2.24. 02:03
사라예보 어디에든 보이는 무덤 묘역 없는 도시는 한국밖에 없다
무덤은 우리 모두 가야 할 곳인데 집값 떨어질까 저 멀리로 쫓아내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이 산다
서쪽의 히칭 묘역을 지날 때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오토 바그너를 만나고 북측 그린칭에서는 구스타프 말러를 보게 된다. 시내 한복판 합스부르크 왕가 묘역에 빽빽이 배열된 황제들의 관 사이에서 만나는 역사의 무상이나 유서 깊은 성당들의 지하 묘역에서 배우는 삶의 경건들은 대단히 각별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버려진 주검들을 모은 도나우 강변 무명 묘역(Friedhof der Namenlosen)에 가면 그 풍경마저 거칠어 우리 삶의 허망을 그대로 껴안고 만다. 60만 평으로 가장 큰 묘역인 남동쪽 중앙묘지공원은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즐비하지만 세기의 음악가들이 집단으로 누워 있어 더 유명하다. 베토벤, 슈베르트, 살리에리, 주페, 슈트라우스, 브람스…. 심지어 주검을 찾지 못한 모차르트의 기념비까지 여기 있으니 음악 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의 순례지며 성지일 게다.
내가 찾아야 하는 곳이 있었다. 내 건축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게 한 아돌프 로스. 20세기 초, 시대 변화를 외면하고 옛 양식의 미망에서 길을 잃은 도시와 건축을 향해 장식은 죄악이라며 외친 건축가였으며 모더니즘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묘역의 담벼락 맨 끝에 주변의 화려한 비석들을 책망하듯 장식 없는 육각의 돌에 붉은 이름으로 단호히 새겨져 있었고, 겨울 묘역의 풍경은 그 침묵으로 더없이 맑았다. 나로서 이보다 더한 마지막 여정은 없었다.
내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무덤들이었다. 내가 묘역에 관심이 많은 건축가여서 그럴 거라고 여기지 마시라. 이곳 묘역은 너무도 특별했다. 곳곳에 아니 함부로 아무 데나 있었다. 높은 산턱에도 있고, 마을 어귀에, 광장에, 공원에도 팻말도 없이 있다. 심지어는 길가에도 그냥 있고, 교회 마당에도, 버려진 뒤뜰에도 묘지와 묘비가 있었다. 묘지는 여기서 일상의 풍경이어서 그들은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산다. 지난 시절 내전으로 이웃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 했던 탓일까, 강대국의 주변 도시로 살 수밖에 없어서도 그럴 것이다. 절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까닭에 수많은 교회와 기도처가 필요하며, 따라서 조그마한 일에도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며 범사에도 진지한 그들이라, 한국에서 온 작은 건축가에게도 그토록 몰두했음이 틀림없었다.
우리의 도시들은 어떨까? 묘역이 없는 도시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을 게다.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곳이지만 묘지는 혐오시설로 간주하여 집값 떨어질 걱정에 저 멀리 도시 밖으로 쫓아버렸고, 성당마저 지하를 납골당이 아니라 상업시설로 채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이 산다. 그러니 삶은 가치가 없어 하루에도 마흔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내 삶이 가치 없으니 남의 삶도 쉽게 멸시하고 적대한 탓에 우리는 늘 각박한 것 아닌가?
내 강의가 끝난 다음, 앞줄에 앉은 중년의 여성이 이렇게 질문하였다. “이 물신의 시대를 우리는 어떤 건축과 삶으로 맞서야 할까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 질문이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혔다. 그리고 불현듯 아돌프 로스가 떠올랐다. 내 건축을 새롭게 하겠다고 서울을 떠났지만 전혀 그대로였으니 빈에 돌아가 그를 다시 찾아 물어야 했던 것이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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