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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미투 운동'의 압축성장痛

바람아님 2018. 3. 27. 19:37

(조선일보 2018.03.26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1991년 '애니타 힐' 사건 계기로 美 관공서 앞다퉈 보완책 마련
性 평등 지수 하위권인 韓國선 '미투 운동' 뒤늦게 한꺼번에 폭발
관련 제도·규범도 함께 성장해야 진정한 사회 변화 끌어낼 수 있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한국에서 '미투' 현상이 왜 이제야 터졌는지 의아해했다.

미국에서는 이른바 '애니타 힐' 사건을 계기로 이미 1990년대에 관공서와 대학들이 제도적 보완을

마련했고, 그 결과 상당 부분 평정되었다는 것이다.


'애니타 힐' 사건이란 1991년 당시 유망한 변호사 애니타 힐이 연방 대법관 후보였던 클레런스 토머스

청문회에서 토머스 후보의 부적절한 성적(性的) 접근을 폭로하면서 미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을 말한다.


미국에서 요즘 이슈는 데이트 폭력으로 옮아갔다고 한다.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만난 후 결과에 대해 생각이 다를 때 한쪽은

'데이트 강간범'으로 몰릴 수 있고, 실제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아 젊은 데이트족이 많은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내친김에 각국의 '미투' 이야기도 나왔다.

싱가포르에서는 여성이 술이 취해 길에서 정신을 잃어도 남성들이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곳곳에 CCTV가 있고 처벌 규정도 엄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피해 관계자들이 강간범을 때려 죽인 사건도 있고 남녀평등 분위기도 한몫해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북유럽은 여권 신장이 많이 되어 크게 문제가 없으며,

아직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남유럽에서도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우리나라 '미투' 사건에는 이런 줄거리가 없다.

즉각 형사범으로 구속 수감해도 시원치 않을 강간 사건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사건,

여기에 애정 관계를 주장하는 데이트 폭력 사건까지 마구 뒤섞여 있다.

피해 여성들이 2차 피해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이 일터에서 물러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위계에 의한 사건도 가해자가 구축한 '왕국'에서 여성을 사노비처럼 부리다 터져 나온 '왕조 시대형',

멀쩡한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계몽주의 권력형', 여기에 부하와 애정 관계였다는 주장을 하는 '로맨스 위계형'까지 다양하다.

가해자들이 유독 진보 쪽에 몰려 있다 보니 특정 성향과 연관 짓는 '이념형'도 빼놓을 수 없다.

이념형에는 비판하는 사람의 의도를 문제 삼는 '음모형'과 자기 쪽 사람들의 허물에 눈감는 '도둑의 의리형'이

부록처럼 따라온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불거진 '미투'가 기업 쪽으로 확산되는 반면(관공서는 이미 정리가 되었으므로),

우리나라 '미투'는 검찰·문학·예술·종교·대학·언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를 흔든다.

대상과 양상이 제각각이니 별의별 주장과 언설이 난무한다.

가해자도 권리를 주장하고 "관계는 있었으나 폭력은 없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금방 난 생채기의 핏물처럼 생생한데, 그걸 치유하는 제도는 너무 미흡하고,

그걸 바라보는 사회의 눈은 잠자리 눈이며, 그걸 해결하는 법은 너무 멀고 복잡하다.


나는 우리 사회의 여성 이슈는 점진적이 아니라 어느 순간 봇물처럼 흘러넘칠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우리나라의 성(性)격차지수는 145개국 중 115등이고,

UNDP가 내놓은 성불평등지수는 145개국 중 23등이다.

대학 진학을 남성보다 많이 하는 여성들이 각계에 포진해 있는데, 남녀가 함께 사는 문법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무지한가.

거기다가 미디어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개인성에 눈뜬 여성과 불평등한 사회와 소통 수단까지…. 깨어나 서로 공명하며 한꺼번에 소리를 낼 수 있는

삼박자가 갖춰져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미투 운동'은 언제든 터져 나올 사건이었다.

문제는 우리 사회 다른 하부구조들―예컨대 제도나 규범과 의식 같은―도 함께 압축 성장해야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도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청문회 증언에도 토머스 판사는 연방 대법관이 되었으나, 애니타 힐의 정직한 증언은 미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애니타 힐 이야기가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고, 머리가 희끗해진 힐은 지금까지 상징적 인물로 건재하며

최근에는 할리우드 개혁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비록 '미투'의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20년쯤 후에는 그렇게 변해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피해자들도 그때까지 꿋꿋하게 성장해서 사회 변화의 증인으로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함께한다(#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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