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06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본에서 '도로(トロ)'라 불리는 다랑어 뱃살은 한국에서도 고급 식자재로 취급된다.
상등품 오도로(大トロ) 초밥 한 점은 수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싸다.
그러나 다랑어 뱃살이 지금처럼 고가의 식재료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유통되기 시작했고, 일식을 대표하는 최고급 식자재로 등극한 것은
70년대 이후이다. 예전에는 몸통의 붉은 살만 남기고 기름이 많은 뱃살 쪽은 그대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마구 버려진 이유는 빠른 부패였다. 동물성 지질(脂質)이 풍부한 다랑어 뱃살은 잡은 지 몇 시간만 지나도 부패가 시작된다.
더운 날에는 어선이 항구에 도착하면 썩은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부패가 빨라 다른 부위가 오염되지 않도록
뱃살을 바로 제거해야만 했다. 오죽하면 '고양이도 안 먹는 생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전기(轉機)가 마련된 것은 콜드 체인(냉장 유통망)의 보급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다랑어를 잡은 후 급랭(急冷)시켜 유통할 수 있게 되자 상황이 일변했다.
냉동 후 해동에 의해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다랑어 뱃살은 다른 어떤 식재료도 흉내 낼 수 없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맛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훗날 연구해 보니 다랑어 뱃살에는 심장병 예방과 뇌기능 강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DHA나 EPA 등 오메가-3계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 다랑어 뱃살이 쉽게 부패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방산이 고급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지금은 최고급 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다랑어 뱃살이지만, 고양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 좋은 자질과 재능은 언젠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당장 알아주는 이 없다고 낙담할 것도 없고, 지금 별 볼 일 없다고 남 괄시할 일도 아니다.
각자의 소질 계발과 맡은 바 소임 완수에 묵묵히 힘쓰는 이들에겐 선물처럼 인생 반전의 세상사 이치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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