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6.25. 01:25
정치·경제 비용 압박이 너무 커
대외정책 비용 축소가 국가전략
한국 역시 미국 보호막 약해져도
남북 화해와 평화 공존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미국-북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요인을 두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스타일이나 그가 대면한 정치적 조건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종잡을 수 없이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고, 또한 그동안 미국이 그래왔듯이 보편적 세계규범이나 이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손익계산으로 상거래하듯 동맹국과의 안보·무역관계를 다루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현재 그가 처한 정치 상황, 즉 가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또는 탄핵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뭔가 극적인 업적이 필요한 정치적 고려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들이 간과하는 것은 트럼프가 북핵 위기와 함께 대중국 정책을 포함해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다루는 전략은 오늘날 미국이 처한 구조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과거 냉전 시기와 같이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운영할 수 있는 국내의 사회경제적 기반은 뚜렷이 약화되었다. 종전과 더불어 냉전이 시작할 때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경제의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최근년에 이르러서는 중국·유럽연합(EU)의 성장과 다른 여러 지역의 경제 발전으로 인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뚜렷이 축소되었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와 기술 발전이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동안 미국의 경제 구조와 생산 체제도 극적으로 변했다. 전통 산업은 붕괴되었고, 중산층은 전면적으로 해체되었으며,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압력을 가중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국제정치 질서는 동구 사회주의 해체 이후 미국 일극체제를 거쳐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되는 ‘이중적 위계구조’라 부를 만한 양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냉전의 마지막 보루였던 한반도가 탈냉전과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현실과 대면한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비전과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나.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보호막 아래 큰 걱정 없이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한국 지도층도 안이한 태도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잘살기 어려워졌다. 미국의 도움이 약해져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 정치적 리더십과 정부 운영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지금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은 남북 간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다져야 할 뿐 아니라 과거에 없던 북한이라는 새로운 경쟁자와 대면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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