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01 장동선 뇌과학자·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
줄리아 쇼 '몹쓸 기억력'
장동선 뇌과학자·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
"그녀가 그날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합니까?"
법정에 소환된 증인은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언하고 판사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한다.
성실한 답변을 하기 위해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기억'. 바로 그 증인의 '기억'을 기반으로
법정의 모든 이들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정황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나가고자 하니까.
"그녀의 행동이 자연스러웠는지 정확히 기억하나요?"
검사가 묻는다. 증인은 곰곰이 기억 속을 더듬는다. 도움이 될 장소와 사람, 대화 같은 단서들을 찾아서.
증인의 기억 속에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섞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뉴스와 미디어에서 보도되었던 내용들이, 같은 장소에 있었던 다른 사람의 증언이, 개인의 기억과 합쳐져
새로운 정보로 저장된다는 사실은 현대 뇌과학과 법정심리학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영국 런던의 범죄심리학자이자 기억 전문가인 줄리아 쇼는 '몹쓸 기억력'(현암사)에서 바로 이 구체적인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뇌는 서로 관련성이 있는 정보들끼리 묶고자 하기에, 관련성이 있는 기사를 읽거나 광고를 본 직후에
그 내용까지 함께 기억하게 되어 '새로운 기억'을 생성한다.
심지어 벌이나 쥐와 같은 동물들조차 여러 가지 정보가 합쳐져 만들어진 '가짜 기억'의 주입이 가능하다.
몹쓸 기억력 :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기억의 착각
줄리아 쇼 지음/ 이영아 옮김/ 현암사/ 2017/ 350 p
181.4-ㅅ634ㅁ/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변호사의 질문도 암시다.
특정 단어를 사용하거나, 사건과 직접 상관없는 내용을 질문에 포함시켰을 때,
기억은 그 질문에 큰 영향을 받는다. 줄리아 쇼는 바로 이 위험성을 지적한다.
스스로를 '기억 해커'라 칭하는 그녀는 반복적인 질문과 암시를 통해서 어떻게 기억을
변형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우리의 기억이 어떻게 변하는지
다양한 실제 실험들의 결과를 소개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는 피해자' 중에서
누가 더 '보여주기'의 고수일까? 우리는 과연 누구를 더 잘 기억할까?
우리의 '기억'은 결코 '진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생각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감정의 동요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졌는지에 따라 '기억'은 변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기억'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억'이 우리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人文,社會科學 > 科學과 未來,環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독]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 수천억대 특허 빼돌렸다 (0) | 2018.09.08 |
---|---|
[아하! 우주] 토성 '육각형 소용돌이' 하늘로 300km 솟아있다 (0) | 2018.09.06 |
[우주를 보다] 토성 북극에 펼쳐진 신비로운 ‘오로라’ 포착 (0) | 2018.09.01 |
[최보식이 만난 사람] 괴롭고 불쾌한 일은 왜 잊히질 않나, 행복한 날은 쉽게 희미해지는가 (0) | 2018.08.27 |
[아하! 우주] '고양이 발 성운'서 물과 유기물 발견..외계생명체 있을까? (0) | 2018.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