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08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일
본을 처음 여행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1인용 식탁뿐 아니라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어서 옆 사람을 볼 일 없이
혼자 밥 먹는 식당을 본 후, 외롭고 쓸쓸한 도시 사람들의 뒷모습이 더 눈에 띄었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카페에 가면 커피나 샌드위치를 시키고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최근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자발적인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관태기(관계 권태기의 약자)란 신조어도 들었다. 타인과 시간과 취향을 맞추느니 혼자가 편하다는 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종종 받는 사연 중 하나는
'혼자이고 싶은데 혼자이고 싶지 않아요'라는 고민이다.
혼자이고 싶지만 외롭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이 모호한 말을 가장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식당과 카페다.
혼자 밥을 먹으며 셀카로 자신의 혼밥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리고, 밥을 먹는 내내 친구들의 '좋아요'를 기다리는
사람들 말이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상태를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은 없다.
톤 텔레헨의 '고슴도치의 소원'은 이런 현대인의 모습이 잘 드러난 동화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하기가 특기인 고슴도치가 동물 친구들을 초대하고 아무도 오지 않을까 봐 밤잠을 설치는 얘기다.
걱정이 가득한 채 고슴도치는 이런 말을 반복한다.
"여기가 제일 안전해, 외롭지만 안전해.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
가까이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딜레마. 어느 정도의 온도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우리에게 적당한 걸까.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다가가기에는 거절이 두렵고, 홀로 있기에는 너무 외로운 우리.
관계에 지쳐서 혼밥을 먹으면서도, 기어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를 기다리는
그 마음들이 유독 눈에 자주 들어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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