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비는 내린다-/인간의 세계처럼 어둡고, 우리의 상실(喪失)처럼 암담하고-/십자가 위에 박힌/1940개의 못꽂이처럼 눈 먼//아직도 비는 내린다/나그네의 묘지에서의 망치 소리로 변하는 심장의 고동과 같은 소리/무덤을 짓밟는 신앙 잃은 발자국 소리를 내며//(중략)보라, 그리스도의 피가 창공에 흐른다/그 피는 우리가 나무에 못 박은 그 이마에서 흘러/지상의 겁화를 지니고 죽어가는 목마른 가슴으로 깊이/시저의 월계관모양/고통으로 검게 더럽혀진 가슴으로 흐른다(후략)'-이디스 시트웰 작, '아직도 비는 내린다', 이창배 번역
1940년 9월7일. 독일이 57일에 걸친 런던 야간 공습을 시작한다. 파괴와 살상은 한때 아름다운 낭만의 세계를 노래한 여성시인의 가슴에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긴다. 이디스 시트웰(Dame Edith Sitwell). 노스요크셔주(州) 스카버러에서 조지 시트웰 경(卿)의 딸로 태어나 가정교사에게서 배우고 더햄, 옥스퍼드 등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화려하고 고답적이며 언어의 음악성에 주목한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반종교적 현실에 대한 우려와 분노, 인도주의 사상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이행했다.
나치 독일의 폭격이 가져온 파괴와 살상의 현장은 시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상실한 현대의 인간이 겪는 비극으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구원의 길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거듭해 써내려간 '아직도 비는 내린다'라는 싯귀는 쉼 없이 떨어져 내리는 폭탄이며 인간이 치르는 죗값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흘린 피를 의미한다. 시를 번역한 이창배는 해설에서 작품의 메시지가 종교적 설득에 있지는 않다고 썼다. 그는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 참상을 노래한 것뿐이다. (중략) '아직도 비는 내린다'는 말의 반복이 주는 그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가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비는 어쩌다 이토록 불길한 전령이 돼버렸을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비가 좋아 빗속을 거닐었고(윤형주ㆍ우리들의 이야기), 노란 레인 코트를 입은 검은 눈동자의 여인이 씌워주는 검은 우산 아래 말없이 걷던 추억이(신중현ㆍ빗속의 여인), 작별을 고하는 울음과 같이(심성락ㆍ비의 탱고) 가슴 저미곤 하던 시절의 감성이 여전하건만. 클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이라는 미국 밴드(그렇다, '야전'에 '빽판'을 돌려놓고 막춤을 추던 그 노래, '프라우드 메리'를 부른 사나이들이다)는 '비를 본 적이 있는가(Have you ever seen the rain)'나 '누가 이 비를 멈출 수 있나(Who Will Stop The Rain)' 같은 노래로 베트남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내리는 비에 공포를 이입하는 정신의 메커니즘은 사뭇 비극적이지 않은가. 기독교의 세례성사에서 보듯, 예수가 요한의 세례를 받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메시지가 성령을 통해 강림했듯이 물은 순결과 새로워짐, 생명, 은총을 상징했다. 그러나 질곡의 인간역사는 쏟아지는 빗줄기에서 포탄세례와 공습을, 죽음과 파괴와 저주를 떠올리게 했다. 고통과 저주로 점철된 이미지의 시대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러한 시대는 너와 내가 우리로 엮이지 않으며 끝내는 적으로 귀결되는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 죽음의 연대(年代)일 수밖에 없기에.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詩-全文]
아직도 비는 내린다
1940년 밤과 새벽 공습
이디스 시트웰 작/ 원 응순 역주
아직도 비는 내린다ㅡ
인간의 세상처럼 어둡고, 우리의 상실처럼 암담하고ㅡ
십자기에 못 박힌 1940개의 못처럼
눈먼 비가 내린다.
아직도 비는 내린다.
무연묘지*에서 망치소리로 변하는
심장의 고동과도 같은 그 무덤을 짓밟는
불경스런 발자국소리 같은 소리로,
아직도 비는 내린다.
거기에 작은 희망들이 싹트고 인간의 두뇌가
저 탐욕, 카인의 이마를 가진 벌레를 기르는 피의 들판에서.
아직도 비는 내린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 굶주린 사나이의 발치에
매일 밤과 낮으로 거기서 못박히는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에게ㅡ
부자(디베즈)와 나자로*에게도:
비 아래에서는 나창癩瘡과 황금도 하나이오니.
아직도 비는 내린다ㅡ
아직도 굶주린 사람의 옆구리에서 피가 내린다:
그는 그의 마음에 모든 상처를 지닌다ㅡ 사라진 빛의 상처를,
몸소 죽은 자살자의 심장의
최후의 아련한 불꽃, 막막한 슬픈 어둠의 상처,
호림을 당한 곰,
주인들이 그의 가엾은 살결에 매질하는
눈먼 울고 있는 곰의 상처를-----쫓기는 토끼의 눈물을.
아직도 비는 내린다ㅡ
그때에ㅡ“아 나는 나의 하나님에게로 뛰어 올라가련다! 누가 나를 끌어내리나?ㅡ
보라, 보라 그리스도의 피가 궁창에 넘쳐 흐름을*”
그 피는 흐른다, 우리가 나무위에 못 박았던 그 이마로부터
깊이 죽어가는 자에게로, ㅡ세계의 불을 소유한
목마른 심장, 씨이저의 월계관처럼,
고통으로 검게 더럽혀진 심장으로.
그때에, 인간의 심장처럼, 한때 짐승들 속에
누웠던 한 어린애였던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ㅡ
“아직도 나는 사랑하고, 아직도 나는 너희들을 위해 내 순결한 빛을,
내 피를 흘리노라.”
*Still Falls the Rain
ㅡThe Raids,1940. Night and Dawn
by Edith Sitwell/ tr. by Won Eung-Soon
Still falls the Rainㅡ
Dark as the world of man, black as our lossㅡ
Blind as the nineteen hundred and forty nails upon the Cross.
Still falls the Rain
With a sound like the pulse of the heart that is changed to the hammer beat
In the Potter's Field, and the sound of the impious feet
On the Tomb:
Still falls the Rain.
In the Field of Blood where the small hopes breed and the human brain
Nurtures the greed, the worm with the brow of Cain.
Still falls the Rain
At the feet of the Starved Man hung upon the Cross,
Christ that each day, each night, nails there, have mercy on usㅡ
On Dives and Lazarus:
Under the Rain the sore and the gold are as one.
Still falls the RainㅡStill falls the Blood from the Starved Man's wounded Side:
He bears in His Heart all wounds,ㅡthose of the light that died,
The last faint spark
In the self-murdered heart, the wounds of the sad uncomprehending dark,
The wounds of the baited bear,ㅡ
The blind and weeping bear whom the keepers beat
On his helpless flesh...the tears of the hunted hare.
Still falls the Rainㅡ
Thenㅡ “O Ile leape up to my God: who pulls me douneㅡ”
See, see where Christ's blood streams in the firmament.”
It flows from the Brow we nailed upon the tree
Deep to the dying, to the thirsting heart
That holds the fires of the world,ㅡdark-smirched with pain
As Caesar's laurel crown.
Then sounds the voice of one who, like the heart of man,
Was once a child who among beasts has lainㅡ
“Still do I love, still shed my innocent light, my Blood, for thee.”
[주] Edith Sitwell(1887-1964): 영국의 한 귀족 가문에 태어난 여류 시인으로, 옥스퍼드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동생들 Osbert와 Sacheberell등과 함께 당시의 Georgian Poetry를 공격하는 시집“Wheels”를 1916~21까지 편집하기도 했으며, “잠자는 미녀Sleeping Beauty”를 비롯한 8권의 시집, 평전, 비평집, 그리고 소설 등 다양한 문학활동을 했다. 그녀의 시는 시형, 리듬, 기괴한 이미저리 창조 등 다양한 실험적인 시들을 쓰면서도 시의 음악적 기교에 큰 관심을 기우렸다.
*해설: 위의 시는 부제에 언급한대로 제 2차세계대전시 1940년 밤부터 새벽사이에 독일군에 의한 런던시의 폭격을 보면서 그 비참한 파괴와 죽음에 대해 느낀 바를 시로 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이런 처참한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실한 현대인이 겪는 비극으로 인식하고, 다시 그리스도를 찾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노래한다. 이 시의 제목이 주는 “비 Rain”의 이미지는 많은 상징을 내포하는 것으로 계속 떨어지는 폭탄의 이미지와 그리스도의 흘러 떨어지는 피의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중요한 표현]
*무연고 무덤 혹은 나그네의 묘지(the Potter's Field): ‘토기장이의 밭’의 의미로 성경 마태복 음 27장 3~10절에 나오는 내용을 말함.
*부자와 나자로(on Dives and on Nazarus): 누가복음 16장 19절~31절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후에 부자 디베즈는 지옥으로, 문등병에 걸린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
*오 나는 내 하나님께로 뛰어 올라가련다! 누가 나를 끌어내리나? (Ile leape up to my God!
who pulls me doune?): dl 독백 같은 구절은 16세기 영국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크리스토 퍼 말로우(C. Marlowe)의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사 The Tragical History of Doctor Faustus”의 재인용된 구절로서,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먹은 포스터스 박사가 악마와의 계약 기간 이 끝나는 12시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외치는 말.
(역주자: 시인, 경희대 명예교수, 영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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