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01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이 몸이 말입니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 만든 걸작품입니다.
아주 비싼 작품이지요"라는 말을 한 사람은 고(故) 채규철 선생이다.
그는 사회 운동가로 평생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았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설립에도 참여했다.
유독 아이들을 사랑했던 그의 생전 별명은 'ET 할아버지'였다.
ET라는 별명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1967년 어느 날, 고아원을 칠해주려고 차 안에 실었던 페인트와 시너가
교통사고로 화마(火魔)가 되어 그의 몸으로 흘러내렸다. 사고 후 그는 귀와 한쪽 눈을 잃었다.
입과 손은 화마로 들러붙었고 울 수조차 없었다. 화마가 그의 눈물샘마저 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정성스레 간호하던 아내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차분히 수면제를 모았다. 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남겨진 어린 자식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
그가 경기도 가평에 '두밀리자연학교'를 열어 대안 생태 학교를 시작한 건 1986년. 공부와 입시에 지친 아이들에게
바람과 별, 흙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지만,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행복을
위해 선물한 셈이다. 그는 2006년 어느 날, 두밀리자연학교의 교장을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곁을 떠났다.
그는 평소 우리가 사는 데 두 개의 'F'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나는 'Forget(잊어버려라)'이고, 다른 하나는 'Forgive(용서해라)'라고.
그는 사고 후, 고통을 잊지 않았으면 자신은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지나간 일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고,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다고 말이다.
누구나 평생 품어봤을 자신만의 가정법(假定法)이 있다.
그때 그 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마지막이었을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렸다면,
나를 끝없이 괴롭히는 가정법 말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건 나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으로부터, 삶으로부터도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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