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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61] 잃어버린 밤하늘

바람아님 2018. 8. 26. 06:33

(조선일보 2018.08.25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내 기억 속 가장 아름다웠던 밤은 인도 아잔타 석굴 근처의 마을에서 본 여름 밤하늘이었다.

머물던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치과에 갈 수 없어 자주 통증을 겪던 마을 할머니는

진통제를 선물한 나에게 멋진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할머니와 걷는 내내 흰 눈을 맞는 기분이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보라가 몰아쳤다.

일평생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그것은 밤하늘의 별이었다. 그 눈보라가 은하수라는 건 훗날 알았다.


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선 최소 450개 이상의 별을 한꺼번에 봐야 한다. 하지만 도시의 인공적인 빛은 별을 가린다.

다행히 지구에는 밤하늘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The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가 그것이다. 한국에선 최초로 2009년에 전남 신안군의 섬 증도가 이 단체에 가입했다.


아름다운 에세이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에는 천문가 존 보틀이 밤하늘을 9개의 등급으로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장 밝은 수준이 9이고, 가장 어두운 수준이 1이다. 서울이나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시들은 등급 9이다.

그에 의하면 젊은 층은 등급 3(지평선에 빛 공해가 약간 있는 시골)이나 등급 2(정말 어두운 곳)의 어두운 밤을

경험한 적이 없다. 미국 국립공원에는 '밤하늘 팀'도 있다. 그들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다음 세대의 큰 문제는 하늘의 장대함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다시 요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은하수라든가 티 없이 맑은 하늘이라든가 개기일식을 보지 못하지요.

지상의 멋진 풍경도 좋지만 정말로 그런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 가슴을 활짝 열어젖혀 주는 것들이니까요."


오래전 인도의 한 시골 마을의 밤하늘에서 내가 느낀 것도 그런 장대함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저 먼 은하계의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한국인도, 세계인도 아닌 지구인으로서의 새로운 인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