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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1] "상공업자의 실력에 나라 장래 달렸다"

바람아님 2018. 8. 24. 08:40

(조선일보 2018.08.24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칼럼 관련 일러스트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는 '일본 근대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세기 말 개국(開國) 이후 서구의 경제 침투에 직면한

일본의 살길은 무엇인가? 시부사와는 '실업(實業) 육성'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금융'과 '주식회사'가 유럽 자본주의의 근간임을 꿰뚫어 본 그는 1873년

일본 최초의 은행인 다이이치(第一)국립은행 설립에 참여한 이래, 은행·보험·

연료·철도·제지·방적·건설 등 근대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수많은 기업의 설립과

경영에 관여하였다.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기업이 5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오늘날 재계(財界)라 불리는 일본의 기업 집단과 거대 산업군(群)의 존재는 그가 이끈 메이지기(期) 산업 근대화의 토대에

힘입은 바 크다. 모은 부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 활동에 헌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으로 더욱 후세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평민 출신의 시부사와는 젊은 시절 관직에 뜻을 두었다.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막신(幕臣)이 된

그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사절단 일행으로 유럽을 방문한다. 이때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꾼다.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상공업자가 당당한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서구를 목격한 그는 일본을

그러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실업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일본에 돌아온 그는 이렇게 심경을 남긴다.

"국가의 인재가 관계(官界)에만 집중된다면 어찌 나라의 건전한 발전을 바랄 수 있겠는가.

관리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감당해 낼 수 있지만, 상공업자는 재주와 수완이 없이는 해낼 수가 없다.

사농공상의 계급사상으로 관리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상공업자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구태(舊態)를 일소(一掃)하고, 상공업자의 실력을 기르고 지위와 품격을 향상시키는 것에 나라의 장래가 달려있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그의 일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