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일사일언] 한두 계단 낮아도 좋아

바람아님 2018. 9. 15. 15:57

(조선일보 2018.09.13 오소희·작가)


오소희·작가오소희·작가


의사 엄마가 아들을 의사 만들려고 시험지를 훔쳤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런 일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뉴스가 되나 싶었다.

들키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부모는 여전히 '도둑질'을 한다.

아이 과제를 해줄 사람을 찾거나 있지도 않은 스펙을 사오거나 시험과 다름없는 글을 대필하거나

하면서 말이다. 도둑처럼 살다가 자식 덕분에 개과천선한 부모는 세상 곳곳에 있겠지만,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서 대놓고 도둑질하는 부모들은 대한민국에만 이렇게나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결국 아이를 한두 계단 높은 학교에 보냈다"며 자랑하고 그 방법을 노하우라며 전파하고 다니는 것을 볼 때면

슬프다 못해 소름이 끼친다. 대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지고 있는 것일까.

교육제도가 잘못되었다고들 하지만 악용하는 구성원은 더 문제다.

나부터 선(線)을 지키면 될 텐데 다들 그저 나만 살고 보겠단다. 내 아이만 살리면 그만이란다.

뒤에 오는 사람도, 함께 달리는 사람도 안중에 없다.

스펙 사재기에 자소서 대필에…. 규칙을 지키지 않는 지원을 받아가며 달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느린 완행열차처럼

홀로 가는 내 아이에게 말했다. "저렇게 하지 않으면 한두 계단 낮은 데 갈 수밖에 없다면 거길 가라.

그곳에 대학이 없다면 안 가면 돼. 도둑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으로 네가 살아갔으면 좋겠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바보 같은 고집이라도 좋다. 아이가 제 몫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냈으면 좋겠다.

그가 노력한 수준에 맞게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면서 말이다. 부모인 나는 그걸 지켜볼 권리와 의무가 있다.

'잘돼라'는기대보다는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는 믿음을 품고서 말이다.


아이가 등교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아이의 방문을 닫는 것이다. 일종의 의식이다.

이제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뜻이다. 엄마 일은 접고 내 일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내 인생의 하루를 옳게 건사 못하면서 젊디젊은 누구의 인생을 걱정할까.

결론은 결국 이렇다. '나나 잘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