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29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명절 연휴, 짬 나는 대로, 틈 나는 대로 밀린 드라마를 몰아서 봤다.
드라마를 다운받는 동안, 신문도 틈 나는 대로 읽었는데 명절과 관련된 기사 중,
매년 단골로 등장하는 여성의 독박 노동 문제 이외에 가족과 친척들의 오지랖 넓은 질문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에 대한 기사가 많아 놀랐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글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질문'이나 '충고'에 시달렸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증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주인공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어렵사리 회사 면접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한 심사 위원이 주인공을 향해 선심 쓰듯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인생 선배로서 충고 하나만 할게!" 그때 주인공이 선언하듯 했던 말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하지 마세요. 어차피 저 붙이실 거 아니시잖아요. 그러니까 상처 주지 마세요. 저도 상처받지 않을 권리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붙여줄 것도 아니면서, 소개해줄 것도 아니면서,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사줄 것도 아니면서,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뱉는 '걱정을 빙자한 핀잔'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말이다.
취업, 결혼, 육아, 부동산은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하나로 마음이 무너질 수 있는 가장 민감한 이슈다.
둘만 모여도 부동산 얘기, 셋만 모여도 취업 걱정인 대한민국 사회 아닌가.
정말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는 얘기조차 잘 살펴보면, 그 사람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 내 마음의 불안을
그런 식으로라도 덜기 위한 행동일 때가 더 많다. 그걸 듣는 사람이 눈치 못 챌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곤란하다.
취업 준비 안 하고 뭐하냐고 캐묻는 둘째 작은아버지와 첫째 고모에게 노후 준비는 잘되시냐고 되묻는다면
기분이 좋을 리 있나.
충고는 원하는 사람에게 하자. 추석 내내 질문에 시달렸을 청춘들을 위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의
연애 버전 하나를 남겨두면 이렇다. 나에게 고백할 자유가 있다면, 상대에겐 거절할 자유가 있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영옥의 말과 글] [67] 고양이와 사랑 (0) | 2018.10.06 |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4] 오사카성 함락의 교훈 (0) | 2018.10.05 |
[일사일언] 내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0) | 2018.09.26 |
[백영옥의 말과 글] [65] 무심하게 산다 (0) | 2018.09.22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3] 明治시대 불어에서 탄생한 '白兵戰' (0) | 2018.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