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06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몇 달 전부터 밤에 공원을 산책하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직감적으로 주인이 버린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다.
새까만 몸은 소스라치며 밤의 어둠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졌지만 뒷모습이 오래 남았다.
소설가 윤이형의 고양이 이름은 '레일라', 에릭 클랩턴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조지 해리슨의 아내에게 연정을 품고 만든 노래 제목에서 딴 이름이라고 했다.
마력의 소유자였던 레일라였으니 이름만 봐도 고양이의 매력이 대단했을 것이다.
'작가와 고양이'는 작가들이 키우는 고양이에 관한 얘기다.
이 책에는 아기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세제 없이 빨아 말린 수건을 세 겹으로 깔아주던 소설가가 등장하고,
냄새로 만들어진 국경을 따라 걷는 고양이들이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고양이들에게 '넓이'보다 탑이나 계단처럼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다.
키우는 고양이가 나이 들어 아무 곳에나 변을 보고, 자주 길을 잃고,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매혹적이던 고양이 '레일라'가 치매에 걸렸을 때, 작가가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말이다.
"사랑이라는 건 실은 얼마나 귀찮은 일들의 연속인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일과 그 사랑에 따르는 것들을 감당하는 일은 얼마나 다른가.
… 함께 사는 일의 지난함을 매 순간 느끼면서. 이유는 단순하다.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다.
삶은 어쨌든 슬프고 공허하지만,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할 때조차 우리가 서로에게 온전히 닿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혼자일 때보다 함께할 때 삶이 훨씬 덜 공허하고 덜 슬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로소 사랑을 말할 수 있을 때는 그것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예쁘지 않을 때가 아닐까.
더위가 치솟던 여름 3개월간 버려진 유기견(遺棄犬)이 3만 마리를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고양이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작가와 고양이 | |
고양이를 쓰다 : 작가들의 고양이를 문학에서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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