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13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미국 뉴올리언스, 양로원 문 앞에 버려진 어린아이가 80세 노인이라는 충격적 설정에서 시작되는
영화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벤저민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그는 80대에서 60대의 외모를 가지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벤저민 버튼의 생로병사는 우리와 정확히 정반대다.
하지만 이 둘은 동양의 윤회(輪廻) 사상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겹쳐진다.
영혼을 믿든 믿지 않든 삶에는 죽음이라는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왜 사는지 질문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역사상 아주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지만, 가장 안 읽히는 책으로도 꼽히는 '시간의 역사' 저자 스티븐 호킹 박사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겠는데 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천재 물리학자도 모른다고 고백한 답을 쉽게 알기는 힘들다.
스물아홉의 내가 서른아홉의 나를 알 수 없었듯, 마흔아홉의 삶 역시 예측하긴 힘들다.
우리는 살아보지 않은 나이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
삶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 아닐까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제는 10년 후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보다 10일, 10시간 후의 나와 10분 후, 1
0초 후의 세계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현자(賢者)는 지금 이 순간에 영원히 머무는 기술을 터득한 사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타인과 나의 관계보다 중요한 게 나와 나의 관계라면,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건 나와 지금 이 순간의 관계가 아닐까.
내가 살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고, 오지 않은 미래와 지나간 과거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노인에서 아기가 된 벤저민 버튼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가장 긴 시간을 살아낸 벤저민의 얼굴이 가장 어리다는 건, 삶이 주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어린 날이므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스티븐 호킹의) 청소년을 위한 시간의 역사 (짧고 쉽게 쓴)'시간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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