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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보다 차라리 감옥이 나아… 노인강도단 결성했죠"

바람아님 2018. 10. 5. 11:15

(조선일보 2018.10.05 백수진 기자)


노인 홀대 비판 '메르타 할머니' 쓴 스웨덴 작가 잉엘만순드베리
64세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누구나 쉽게 읽어야 잘 팔리죠"


"답답한 요양원에 사느니 차라리 감옥이 낫겠어!"


감옥에선 하루 한 번씩 산책도 시켜준다는데 요양원에선 외출은커녕 간식조차 마음대로 못 먹게 하다니….

요양원에 사는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 4명은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강도단을 결성한다.

노인을 홀대하는 사회에 유쾌한 한 방을 날리는 스웨덴의 노인 범죄소설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열린책들)이 최근 국내 출간됐다.

총 3권으로 완간된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는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번역되면서 200만 부가 팔렸다.

스웨덴 공영방송 SVT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완간을 기념해 4일 내한한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70)는 소설 속 메르타 할머니가 튀어나온 듯했다.

호피 무늬 셔츠에 녹색 스카프를 두른 잉엘만순드베리는 할머니가 동화 구연하듯 목소리를 바꿔가며 질문에 답했다.


우울한 노인들에게 응원을 부탁하자 잉엘만순드베리는 “체조도 하고, 채소도 먹고 자신을 아끼는 노력을 하다 보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우울한 노인들에게 응원을 부탁하자 잉엘만순드베리는

“체조도 하고, 채소도 먹고 자신을 아끼는 노력을 하다 보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수중고고학자, 스웨덴 일간지 기자를 거쳐 64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인생 대부분을 바닷속에서 살았다. 침몰한 배에서 유물을 찾아내며 넉넉히 돈을 벌었다.

은퇴 후 연금을 타면서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글을 잘 쓰니까 베스트셀러를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도전했다.

2년간 역대 베스트셀러들을 읽으며 비결을 연구했다."


―비결은 무엇이었나.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 내 책의 독자는 7세부터 106세까지 다양하다.

특히 11~14세 남자아이들이 좋아한다. 내 정신연령과 딱 맞는 것 같다."


―책 속 요양원에선 간식은 금지, 산책도 어쩌다 한 번뿐이다.

"10년 전쯤 한 요양원에 방문했다. 정부 지원금이 삭감되면서 직원이 줄자 외출이 불가능해졌고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커피양까지 정해놨다. 지금의 스웨덴을 만들어주신 분들인데 커피도 못 마시게 하다니!

말년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 싶었다."


―노인 강도단은 은행을 터는 방식도 기상천외하다. 쓰레기 수거차로 금고 속 돈을 후루룩 빨아들인다.

"그냥 총 쏘고 돈을 내놔라 하면 재미없지 않나. 심각한 일도 가만히 보면 분명히 웃기는 면이 있다.

어떻게 재밌게 은행을 털지 6주 넘게 구상했다. 건물 도면을 찾아보며 연구했던 고고학자 시절 경험이 도움이 됐다."


―범죄소설이지만 로맨스도 있다. 메르타 할머니는 같은 강도단 멤버와 약혼해 79세에 결혼을 고민한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92세에 본인 비서와 동거를 시작했다.

99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7년 동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다더라.

인간은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은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조세 회피로 재정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젊은 시절 높은 세율을 기꺼이 감당했던 지금의 노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노인 강도단이 탈세하는 부자들의 재산을 노리는 것도 그런 문제의식을 담았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도 48세에 데뷔했다.

늦깎이 소설가의 장점이 있다면?

"20대에 작가가 되면 3년쯤 쓰다가 '이제 뭘 쓰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40대에 시작한 사람들은 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미 머릿속에 두꺼운 책을 하나 지닌 셈이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삶이 달라졌나.

"전 세계를 여행했다. 벌써 11개 국가를 돌아다녔다. 생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무엇보다 더 이상 늙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