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0.10.16 이한우 기자)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지음|이경남 옮김 | 민음사|838쪽|3만3000원
331.54-ㄹ974ㄱ/ [강서]2층 자료실서고/ [정독] 2층
"인류는 공감 지향" 전제, 심리·생물·역사학 근거로 21세기형 인간상 제시
"3차산업혁명 시대인 현대는 정보화+에너지 개발 요구… 민족과 국가 새 협력 이끌어"
이번엔 공감(共感·empathy)이다.
'엔트로피' '수소혁명' '노동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 시대의
방향을 예리하게 진단하는 묵직한 주제를 담은 저서들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워튼스쿨 제러미 리프킨 교수가 최신작을 통해 던지는 이 시대의 어젠다다.
어쩌면 그간 리프킨 교수의 다양한 작업은 이번 저서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는지 모른다.
책은 공감이 무엇인지도 다루지만 인간은 무엇이고, 21세기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또 정보혁명이 인류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종횡무진 탐색한다. 저자는 인간에
대한 프로이트의 정의(定義) 즉,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해 늑대(Homo homini lupus)"를 거부하고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이렇게 말한다기보다는 최근 아동발달 심리학과 생물학 등의
경험적 자료를 동원해 그동안 왜곡되고 백안시됐던 인간의 공감 능력을 재조명함으로써 공감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회복하려고 한다.
또한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사회에 대한 홉스의 정의나 허버트 스펜서가 개진한 사회진화론의
핵심주장인 적자생존(適者生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주장이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21세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에 도대체 이 '사상가'는 무슨 말을 하려는가?
설마 "'경쟁'을 버리고 '협력'을 택하라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거울신경세포란 유전학의 발견성과로, 이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거울신경세포의 별명이 바로 '공감 뉴런(empathy neuron)'이다. 서양 근대사상을 지배해온 홉스의 성악설(性惡說)이
끝나고 공감뉴런에 바탕을 둔 성선설(性善說)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다음 주제는 산업혁명이다. 리프킨은 에너지 제도와 커뮤니케이션의 결합에 주목해 1·2·3차 혁명을 설명한다.
1436년 구텐베르크는 이동 가능한 활자를 만들었다.
물론 그에 앞서 중국과 한국인들도 나름대로 인쇄술을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활자라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서양에서는 석탄·증기·철도와 연결된 반면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엔진을 만들면서 석탄 에너지 혁명이 가시화됐고
그것이 우리가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1차 산업혁명이다.
이어 19세기 후반 전화·라디오·텔레비전·전동타자기·계산기 등 1세대 전기통신이라 불리는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등장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석유의 대량생산 및 내연기관이 맞물리면서 20세기 내내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됐다.
리프킨의 이 같은 혁명단계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정보화 혁명이다.
이것은 그의 시각으로 보자면 커뮤니케이션혁명일 뿐이다. 앞으로 그에 어울리는 에너지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
아니 자연스럽게 수반될 것이다. "지난 20년간 분산형 정보통신혁명이 21세기 분산 에너지 제도의 길을 닦았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분산자본주의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이 같은 3차 산업혁명의 3요소로 그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가발전소를 갖춘 공장이나 건물, 재생에너지 저장법을 꼽는다.
탁상공론이 아니라 경영학의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그 대안이 구체적이다.
리프킨이 '공감의 시대'라고 부르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그의 그림은 낙관적이다.
"3차 산업혁명은 민족과 국가를 전례 없는 새로운 차원의 협력관계로 끌어들여 전력(電力)이 널리 분산되는
새로운 사회적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다. 3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민주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 같은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혁명은 일상생활에도 일대 변화를 가져온다.
이미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에서 개인의 창의력과 경제적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데 노력해온 유럽 국가들의 장점을 미국의 단점과 대비시킨 바 있다.
3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낼 사회상(像)은 이 점을 좀 더 밀고 나간 느낌이다.
"네트워크화된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활동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戰意)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제로섬 게임은 끝나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소유의 시대는 끝나고 접속의 시대가 열린다. "지금 미국의 도로 위를 달리는 차의 40%는 리스차량이다."
물론 그런 사회에서도 경쟁의 치열함은 존재한다.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접속권을 확보하려는 21세기의 개인이나 집단의 투쟁은 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19세기와 20세기의 투쟁만큼이나
치열해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남의 것을 빼앗아 쟁취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제야 리프킨이 공감을 이야기한 이유가 드러난다.
이데올로그들이 흔히 잘못을 저지르듯 자신의 일방적인 인간관을 설정한 다음 거기에 기초한 사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방향을 진단한 다음 거기에 어울리는 인간형으로 '공감하는 인간'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마도 책 전반부에서 온갖 사상가와 과학자들의 주장과 자료를 동원해 공감을 옹호하는 것은 공감에 대한
우리의 냉소가 얼마나 깊은지를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리프킨의 주장에 공감하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세계를 '공감의 시대'로 이끌 모범답안 가진 나라는? |
"북한이 농축 우라늄으로 핵폭탄 만드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일" '공감의 시대' 이경남 역자 지난 21일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비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학자가 있다. 바로 사회사상가이자 세계적 경제학자로 꼽히는 '제러미 리프킨'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신작 '공감의 시대'를 통해 '분산 에너지'와 '분산 네트워크'를 강조한다. 책을 읽고 나면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려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북한이 원자력 핵무기를 만드느냐, 마느냐를 감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가능해진다. 수많은 갈등 구조에 얽혀 있는 세계가 문제의 원만한 해결점을 찾는 길은 '공감'에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뜻은 무엇인지, 지난 18일 이 책의 역자인 이경남(56) 전문 번역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책은 경제에도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란 무엇인가? "원제는 'THE EMPATHIC CIVILIZATION'이다. 직역하면 '감정이입의 문명'이다. 하지만, 이건 범위가 제한된 미학용어일 뿐이다. 그렇게 '공감'이 되었고 이것이 책의 의미전달에는 더 정확한 번역이다. 제러미의 경제학적 '공감'은 '분산 자본주의'다. 간단히 말해 더는 특정 엘리트 집단이 경제 수단을 장악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제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론가다. 가령 작곡가가 악보를 쓰는데 이 악보가 관객의 호응을 얻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악보는 악보로만 봐야 한다. 책이 말하는 '공감의 시대'가 가능한지 역시 따져봐야 한다. 세계 네트워크가 수평적 입장에서 새로운 경제를 만든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사상이 사실 꿈 같은 얘기지만, 실현 가능성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 그렇다면, 현재 수평적 세계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개발원조가 이뤄져야 하나? "결국, 세계 경제는 에너지 싸움이다. 화석 연료, 석유, 우라늄 등을 현대 강대국들이 독점하고 있고, 이 때문에 몇 천 년 동안 제3세계 사람들은 상상 못할 피해를 받고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라든가, 기후변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열악한 계층으로 돌아간다. 쓰는 사람, 즉 첨단 산업을 누리는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제러미가 강조하는 것도 에너지의 평준화, 분산 에너지, 분산 자본주의인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도 '중소기업 육성책' 같은 것을 매년 내놓고 있지 않나. 이러한 노력이 계속될 때 갈등구조가 '공감' 적 분위기 형성과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세계 속에서 '공감'의 시대를 이끌 우리나라의 역할은? "제러미 리프킨은 지정학을 싫어하고 극복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고,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다. 또 세계 두 번째로 못 사는 나라에서 현재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바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성공사례로 보여지는 국가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과제가 있는 셈이다. 책에서 말하는 공감적 요소는 우리나라에 가장 절실하고 또 우리가 잘 해내기만 한다면 전 세계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세계 유일 통일국가로, 가장 복잡한 갈등구조로 되어 있는 국가가 '공감'을 키워드로 극복한 사례로.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범으로 거듭날 가장 멋진 과제를 품고 있다." - 남기고픈 역자 후기는? "이 책 마무리 단계에 원자력 협회장을 역임했던 삼촌을 만났다. 제러미 리프킨과는 반대되는 사상을 가지신 분이다. 삼촌은 지금 세계에 일고 있는 이상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제러미 리프킨은 원자력은 너무도 위험한 에너지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 사용 문제도 그 일환이다. 세계 강대국들은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를 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북한의 우라늄 핵무기 제조는 두려워한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바로는 북한이 농축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만들게 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나 마찬가지다. 책은 지난 2004년 아랍 테러단체가 호주 원자력 발전소를 폭파하려 했던 사건을 들어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상기시킨다. 원자력 발전소 테러는 '911테러'보다 파급력이 대단한 것이다. 몇 십년 동안 사람들은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나라 전체가 병들 것이다. 만약 이런 테러조직이 강화돼 핵 발전소를 테러 타깃으로 삼는다면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상못할 위험, 갈등 구조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아직은 비현실적이지만, 책이 말하는 '공감의 시대'가 하루빨리 찾아와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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