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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 일기] 자식에 특혜 주는 게 사랑인가 평생 '양심의 전과자'로 살게 돼

바람아님 2018. 12. 9. 08:27

(조선일보 2018.12.08)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자식에 특혜 주는 게 사랑인가 평생 '양심의 전과자'로 살게 돼


/일러스트= 이철원


모두 믿고 있었던 교육계에서 부끄러운 사건들이 벌어졌다.

S여고의 선생이 두 딸에게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 주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어느 대학의 교수는 연구 업적을 자녀와 공동 연구한 논문이라고 발표한 사례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아버지는 교육의 본질을 저버리는 과오를 범했다.

수준이 낮은 부모는 자녀에 대한 욕심을 교육이라고 착각한다. 지혜의 결핍이다.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아들딸이 40~50대 성년이 되었을 때 어떤 인격을 갖추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인격적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어리석은 학부모나 선생이 이기적 욕심에 빠지게 되면

자식을 일생 동안 '양심의 전과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내 큰아들이 초등학교 졸업반일 때였다. 나는 그 애를 대광중학교로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해에 대광중학교는 제2차로 입학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내가 담임선생을 찾아가 상의했다.

담임선생은 성적순으로 1등부터 11등까지는 입학 경쟁이 가장 심한 경기중학교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면서

11등인 내 아들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에서 결국 경기중에 합격한 학생은 1등과 우리 애뿐이었다.

내 아내가 잘 아는 다른 학부모를 만나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애는 '어머니 점수'가 없었으니까 자기 실력이었을 겁니다"라는

것이다. 아내는 학교에 찾아간 적이 없다. 어머니들 치맛바람이나 욕심이 애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 선배인 C 교수는 아들이 연세대를 졸업할 때까지 자기가 어느 교수의 아들이라는 말은 절대 안 하기로 약속을

받은 일이 있다. 당시에는 대학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다른 교수들이 어느 교수의 자녀라는 것을 쉬 알고 지내던 때였다.

C 교수는 아들이 사사로운 대우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나도 아들딸이 연대를 다녔다. C 교수와 같이 두 애에게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 후배 교수나 조교들에게 수강생 중에 우리 애가 끼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학생들은 실력을 공정히 평가받고 자기 위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자세가 젊은이다운 기상이 된다.


두 애 중 하나는 후에 연세대 교수가 되고 딸애도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

모든 부모는 자녀들을 운동경기장에 출전시킨 선수와 같이 대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애들을 위하는 책임이다.


수능시험을 끝내고 나니까 자녀들을 데리고 입학 설명회에 참석하는 어머니를 많이 본다.

나와 내 아내는 그런 모임에 가본 적이 없다. 요즘 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이미 성년이다.

자신의 앞길을 위한 선택과 책임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야 한다.


입학기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