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12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금 귀걸이, 김포 운양동 유적, 국립중앙박물관.
2009년 8월 13일, 한강문화재연구원 김기옥 선임연구원은 이성진·민경산 연구원 등과
함께 경기 김포 운양동의 야트막한 산 위에서 며칠 전 윤곽을 확인한 무덤의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 다행히 무덤구덩이와 둘레를 따라가며 판 도랑이 남아 있었다.
무덤구덩이 중심부에 토층 확인용 둑을 남기고 내부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서북쪽 모서리를 조금 파들어 가자 창·괭이·낫·끌 등 철기가 무더기로 출토됐다.
이어 무덤 한가운데 바닥 가까이에서는 목관 안에 묻었던 길쭉한 철검과 화살촉이 가지런한 모습을 드러냈다.
둑을 제거하고 무덤 바닥면 전체를 드러내자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서 구슬이 쏟아졌다.
투명한 수정, 붉은색 마노, 푸른색 유리 등 1000점이 넘었다.
조사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구슬 무더기 속에 끼어 있는 금제품이었다.
서로 10㎝가량 떨어진 채 출토된 2점의 금제품은 마치 손톱처럼 생겼고 길이는 2.8㎝였다.
김 연구원은 '마한 사람들은 금과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구슬을 좋아한다'는 역사 기록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졌다.
발굴된 위치로 보면 귀걸이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발굴된 귀걸이와는 형태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9월 16일 발굴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최병현 숭실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 금제품이 만주에 분포하는
부여 귀걸이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송화강 중류에 위치한 부여의 귀걸이가 멀리 한강 하류로
전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 달 후 또 다른 무덤에서 같은 모양의 금 귀걸이 1짝이 추가로 발굴됐다.
김 연구원은 발굴 성과를 종합해 운양동 주구묘(周溝墓·주변에 도랑을 두른 묘)가 '3세기경 만들어진 마한 유력자들의
무덤이고 금 귀걸이는 마한과 부여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라 해석했다.
근래 한반도 중부 지역 여러 곳에서 부여계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마한과 부여 사이의 교류를 해명할 단서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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