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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에서 본 한반도>중국發 퍼펙트 스톰에 대비책 있는가

바람아님 2018. 12. 13. 09:13
문화일보 2018.12.12. 15:40
지난 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90일간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AP 연합뉴스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미·중 갈등 심화 속 中경제 침체

정부 개입으로 시장 왜곡 뚜렷

국수주의 고조 땐 한국에 위험


지난주 중국 베이징(北京)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그 대학 교육대학원과 아시아개발은행이 공동주최한 행사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산학협동과 혁신의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식 모델을 전파하겠다는 공공외교적 의도가 엿보였다. 그동안 해외원조 등 물량 공세에 치중하던 중국이 이젠 소프트웨어에도 관심을 두겠다는 전략의 일환일 것이다. 아직은 미국과 군사·경제적으로 전면적 대결을 할 만한 힘은 없어 피하지만 미국이 깔아놓은 소프트 파워의 프레임을 바꿔보자는 것으로,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중국 방안(Chinese Way)’을 전파하겠다는 정책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주 관심사는 역시 경제와 미·중 무역갈등이었다. 미국과의 무역갈등 이전에도 중국 경제는 이미 고성장에 따른 거품, 도·농 간 불평등 등 여러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었다. 중국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성장률 저하가 아니라 시장구조의 왜곡을 걱정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정부의 직간접 개입이 심해지고, 시장이 뒤틀릴 위험성도 커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경영이 어려운 민간기업의 지분을 국영기업들이 인수해 영향을 미치려 하는데, 맘에 안 들면 알리바바처럼 창업자 교체까지 감행할 수 있으며 마윈(馬雲)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기업들의 사정이 어렵더라도 감원을 하지 못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감원을 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도 생겼다고 한다. 다급해진 정부가 시장의 원리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해 단기처방에 집중하다가 자칫 경제 구조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올 하반기에만 중국을 세 번 방문하면서 기업인 외에도 대학생, 교수 등 다양한 그룹과 미국과 중국의 정치, 그리고 미·중 관계에 대해서 여러 차례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중 정책이나 재선 가능성 등에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물으니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트럼프가 중국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자칫 시진핑 정부가 중국경제의 침체나 다른 문제점들을 미국 탓으로 돌리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때마침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재무책임자인 멍완저우(孟晩舟)가 미국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되면서 반미 정서의 확대와 함께 국수주의가 고조될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화 말미가 되면 늘 염치 불고하고 가장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는 가능할 것인지. 이 중에는 1989년 민주화 운동 참여로 수 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지인도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은 잘못된 것이지만, 국내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어 당분간은 1989년과 같은 정치적 저항이 쉽게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경제가 어려워지고 민심이 악화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무역 압박은 중국에는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향후 수년간 중국의 경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국수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경기 하강과 국수주의 고조는 한국에도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대중 수출은 위축될 것이며,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은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무역 다변화가 더욱 시급해졌다. 중국 국수주의가 강화되면 사드 문제처럼 한·중 분쟁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커진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동맹국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하는 등 중국에 공을 들였지만, 사드 갈등으로 한·중 관계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일시적인 봉합을 하긴 했지만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시도나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한·중 외교부 차원에서 첫 번째 전략대화를 한 것이 2015년인데, 사드 문제가 ‘풀린’ 현재에도 2차 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한 지인은 시 주석의 권력이 이미 정점을 지났다고 평가했고, 다른 인사는 정부에 대한 엘리트들의 신뢰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제나 정치의 최고·최저점은 지나친 뒤에야 알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을 강타할 퍼펙트 스톰은 어쩌면 북한이나 다른 나라가 아닌 중국발(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톰은 황사나 미세먼지가 아닌 경제 침체와 국수주의일 것이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중국발 스톰이 닥쳤을 때 한국은 과연 준비가 돼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