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년 동안 피땀 흘려 건설한 나라가 “기적적으로 망해 가고 있다”는 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높다. 서울시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광화문광장을 허물고 ‘촛불’이 새겨진 새로운 광장으로 만들려는 욕망을 보인 것은 역사를 지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불과 3년 전, 국민의 일부가 들었던 ‘촛불’이 이순신 동상을 밀어내고 대한민국의 심장을 상징하는 광화문광장에 위치해야 할 만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일까. 역사적인 사건은 적어도 최소한 100년이 지나야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여론이 나쁘게 돌아가자 박원순 시장은 “연말까지 시민공청회를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7억 원이나 들여 설계 공모를 하고 당선작을 발표한 것은 2022년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있어 보인다.
서울시장은 나름대로 구구한 주장이 있을 것이나, ‘시장이 바뀔 때마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들여 광화문광장을 허물고 새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분명한 답을 해야 한다. 오세훈 전 시장이 광화문 거리에 있는 굵은 은행나무 숲을 제거하고 세종대왕 동상을 세운 대역사(大役事)를 한 것이 10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일시적이지만, 역사는 지울 수 없는 유적과 함께한다. 나폴레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60만 프랑스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개선문은 파리에 그대로 서 있다. 로마의 살인 현장인 콜로세움도 그렇다. 고색창연한 이탈리아 중세 도시 피렌체의 작은 돌이 깔린 길바닥을 노예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아스팔트로 포장하면 모두가 환호할까. 그렇다면 서울의 상징적 중심인 광화문광장은,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한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대가 어우러진 서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돼야 한다.
그런데도 세금을 1040억 원이나 들여 지하 시설 확장과 함께하는 새 광장 조성이 2021년까지 꼭 필요한 것일까. 이보다는 한국미를 살리기 위해 조선조 500년 역사의 전통문화를 가진 동대문∼종묘(宗廟)∼종각을 잇는 전통적 문화 구도 속에서 종로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서울은 지역적으로 매우 넓은 도시이기 때문에 아직도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는 달리, 우면산 부근의 예술의 전당이나 과천 현대미술관은 교통이 불편할 정도로 지역적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
프랑스인들은 아름다운 파리를 만들기 위해 센 강의 물빛을 이용했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한강을 도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했다. 오세훈 전 시장이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한강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했으나, 시장에서 물러나고 나니 이내 중단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경우 몇 개의 유명한 미술관이 지척 거리에 있고 오페라하우스 건물로 유명한 파리에 연중 계절 없이 관광객이 몰려 엄청난 수입을 올려 준다.
파리나 모든 선진국의 광장처럼 한번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면 오래 보존돼야만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 문화적으로 서울을 상징하는 광화문광장이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목적으로 조삼모사(朝三暮四) 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헐고 다시 짓는 것은 조잡한 정치적 ‘분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념적인 ‘촛불’ 시위 행렬 이미지를 광장의 바닥에 새기기 위해 성웅 이순신의 동상을 치우는 것에 국민은 슬퍼할 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시장의 정치적 전유물이나 홍보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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