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019.02.02. 11:00
곳곳에 아픈 근현대사 흔적..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
"정말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지었다고요?"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마을해설사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묘지 위 마을을 자칫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비석 마을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면 금방 궁금증을 풀게 된다.
비석 마을은 부산 근현대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장소인데,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마을을 형성했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비석 마을
개항 이후 용두산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해 가던 일본인들은 처음에 용두산 북쪽 자락인 복병산에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1905년 북항을 매축하면서 필요한 토석을 복병산에서 채굴했고 이때 공동묘지를 아미산으로 옮겼다.
아미산 고개는 부산항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다.
1909년에는 화장장도 아미동으로 옮겨왔다.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던 이곳은 당시로선 죽음의 공간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밤마다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아미동 하늘 전망대에 올라가면 익살스러운 도깨비 조형물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공동묘지가 피란민 삶의 터전으로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갈 곳이 없었다.
영도다리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당시 자갈밭이었던 자갈치에서 천막을 치고 살던 피란민들은 정부 이주정책으로 인해 터전을 옮겨야 했다.
피란민들은 가까운 서구 아미동을 비롯해 산복도로 곳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최근 투어코스로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 비석마을 인근 감천문화마을도 이때 생겨났다.
당시 아미동에는 광복으로 서둘러 돌아간 일본인들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묘지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갈 곳 없는 피란민들에게는 묘지도 두렵지 않았다.
묘지 위에다 천막을 치고는 집을 만들었다.
지금도 비석 마을 곳곳엔 과거 묘지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비석은 가파른 계단 디딤돌 또는 집 주춧돌 등으로 활용됐다.
◇ 아픔 간직한 역사를 관광자원으로
아미동 비석 마을은 바로 옆 감천문화마을보다 아직 덜 알려져있다.
부산 서구는 아미·초장 도시재생프로젝트를 통해 주민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비석 마을 역사를 널리 알리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도시재생사업은 2016년 시작해 2020년까지 5년간 진행되며 사업비 100억원이 들어간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2018 도시재생 뉴딜' 대상에서 주거복지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비석 마을 대성사 인근에 일본인과 초기 정착 주민을 추모하는 공간도 생겨났다.
마을 이야기와 역사를 알리기 위해 피란 생활박물관과 역사 광장도 조성될 예정이다.
천마산 게스트하우스 단지가 조성돼 관광객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될 예정이다.
이 밖에 폐·공가 등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일본인 묘지와 피란 문화 등 역사적 자산을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handbroth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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