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5.04. 03:06
트로트 가수들은 방송에 나오지 않을 때가 전성기라는 말이 있다. 행사를 많이 뛰느라 방송 출연할 시간이 없을 정도면 그나마 벌이가 괜찮다는 뜻이다. 시군 축제부터 장터, 칠순 잔치 같은 곳에서 트로트 가수들을 초청한다. 개런티가 30분 노래에 100만원 미만부터 단 세 곡에 수천만원까지 유명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무명 가수는 평소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일이 생기면 매니저도 없이 혼자 버스 타고 노래 부르러 간다.
▶트로트는 서양의 춤 형식인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따온 말이다. 여우가 걷듯 4분의 4박자에 맞춰 사뿐사뿐 추는 리듬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트로트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한때는 트로트가 왜색(倭色)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2000년대 이후 젊은 가수들이 등장해 댄스곡에 '쿵짝쿵짝' 리듬 넣어 부르며 '네오 트로트'라고 했다. 대중음악의 대세가 서양풍으로 넘어가면서 트로트는 간단한 편곡에 '안아줘요' '대박이야' 같은 가사로 공연장 대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울려퍼지는 노래처럼 됐다.
▶엊그제 끝난 TV조선 '내일은 미스 트롯'의 결선 진출자들이 모두 나름의 눈물을 흘린 데에는 그런 사연이 있다. 이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노래 신동'으로 불렸었다. 지원자 1만2000명 가운데 최종 다섯 명에 뽑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신의 모습과, 가수 꿈을 접고 장터나 뷔페 식당에서 노래해 온 기억이 교차했을 것이다. 시청률이 18.1%까지 올라간 것은 이들의 노래 실력뿐 아니라 그런 인간적 모습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트로트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재즈 애호가 중에는 1960년대 전후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를테면 현미의 '밤 안개'가 그렇다. 이 노래는 프랭크 시내트라를 비롯해 수많은 가수가 불렀던 재즈가 원곡이다. 이난영·고복수를 비롯한 옛 가수들이 모노(mono)로 녹음한 노래들도 새롭게 조명되곤 한다. 그만큼 트로트는 20세기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냈던 장르다.
▶'미스 트롯' 후속 프로그램으로 남자들이 경연하는 '미스터 트롯'이 기획되고 있다고 한다. '미스 트롯'과 출연자 연령은 비슷하게 하되 형식은 좀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년 1월쯤 첫 방송을 볼 수 있다. 이른바 '트로트 사대천왕'이라는 현철·송대관·태진아·설운도를 이을 젊은 남자 가수들이 전국에서 올라올 것이다. 또 한바탕 웃음과 눈물바다의 무대가 기대된다.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수대] 운동권 '꼰대' (0) | 2019.05.10 |
---|---|
[朝鮮칼럼 The Column] 왜 남을 만지면 안 되는가 (0) | 2019.05.07 |
거짓말 들통나 의원직 상실.."이게 나라다" (0) | 2019.05.04 |
<오후여담>정조 '욕보이기' (0) | 2019.05.03 |
[분수대] 아키히토와 맥아더 (0) | 2019.05.02 |